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한 군데는 원했던 곳, 다른 한 군데는 생각지 않았던 제안으로 연락이 왔다. 나는 각각 방문하여 면접을 보았고 오늘 저녁 자괴감에 빠졌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일찍 키워놓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했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셋을 낳아 기르면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에 애국하는 길이라고 했다. 나라에서는. 나는 아이를 셋을 낳았고 양쪽 부모님 도움 없이 키웠으며 이제 때가 되어 사회로 나갔는데 다들 긴 시간 휴직했다고 망설여했다. 어떤 곳에서는 당장 출근 가능하냐 묻고는 다음번에 응시 부탁드린다는 문자로 나를 놀라게 했고 어떤 곳에서는 시댁과 친정이 멀리 사시냐는 일과 상관없는 질문도 던졌다. 아이를 맡기지 못하고 긴 시간 주부로 살았던 시간의 당위성에 대한 질문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스스로 키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를 해놓고도 나는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 쳤다.
사람을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한 이해를 거친 후 생각해보아도 오늘 하루는 연거푸 이상한 일의 연속이었다. 경력이 모자란 십여 년짜리 유휴간호사인 나는 희망과 거절에 담금질당한 며칠을 보냈다. 직장의 좋은 점에 대해 상세히 듣고 난 후 긍정적인 답변이 올 것 같았던 곳에서의 거절, 지원분야 아닌 다른 분야로 입사하시면 안 되냐고 집이 가까워서 좋다고 하던 곳에서의 망설임은 나의 자존감이 뒷걸음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느 곳을 가도 유휴간호사라는 딱지가 내발 목에 매달려 있을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전진을 잠시 멈추고 할 수 있는 일로 걸어갈수록 점점 작아져간다. 그리고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기분에 대한 호소를 하기 위해 또다시 나만의 대나무 숲으로 기어들어와 글을 쓴다. 그래도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 포기할 수가 없어 또다시 일정량의 원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모르는 번호가 뜨면 두근거리며 전화를 받겠지. 그 전화들이 연결되어 가닿는 곳이 거절이 아닌 예스로 만나게 되는 인연이었으면.
인내와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이라지만 이런 식의 기다림은 그만 멈추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