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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an 01. 2020

마음속, 꽃이 피었습니다.

일상생활

 -뭐야, 이거 곰팡이가 다 슬었네. 하나도 못 먹잖아. 아까워서 어쩌지.

 창고형 대형마트에 가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식빵 두 줄. 한 줄은 거의 다 먹어가지만 빼곡히 들어있는 나 머지한 줄이 듬성듬성 파란 꽃이 피었다. 식빵에 스며있던 촉촉한 수분 기와 따뜻한 집안 공기가 만나 이루어진 결과물일까. 어떻게든 제거하고 먹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지만 곰팡이가 핀 것은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던 건강칼럼의 한 부분이 기억 속에서 삐죽이 나온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건강하려고 먹는 것인데. 아무리 가성비가 뛰어나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시간이 경과된 것은 본질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경제적 불안감으로 길게만 느껴지던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출근시킬 것 같던 몇 군데의 직장에서 거절을 경험한 후 나는 나의 짧은 경력을 붙들고 안절부절못했다. 자신도 알고 있는 약점을 상대가 들추어내는 것은 더욱더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취업도 안 되는 것 같고 남편의 일도 잘 풀리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하루는 무한대의 불안을 응축해놓은 농축된 시간이었으므로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취직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남편의 빛이 더 불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던 것은 따지고 보니 다이어리의 몇 칸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멈춘 시간들을 보냈다. 가끔 핸드폰 액정에 모르는 번호가 뜨면 부리나케 받았고 결국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일들인 것을 확인한 후 한숨을 쉬며 끊고는 했다. 자신의 처지가 작아져갈수록 좀먹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치 언제 사두었는지 잊어버린 채 오븐 위에 올려놓은 저 식빵 한 줄처럼 말이다.

 전공은 하지 않았지만 놓을 수는 없는 꿈.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좋아하는 걸 하면서 벌어보고는 싶지만 나는 그 분야에 증명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줄 알고 가차 없이 뒤를 돌아서서 이제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곳. 삼 교대를 하고 일을 하는 동안은 전화를 받을 수 없고 환자와 보호자들, 의료진들로 하루 종일 사람들에 치여야만 하는 그곳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를 받아줄지 말지 불투명한 상황이 되자 나는 파란 꽃이 자라나기 좋은 환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OO이가 이번에 승진을 했다더라.

 주말에 갔던 시댁에서 아버님의 대화 시작은 이러했다. 승진을 했지만 봉급은 오르지 않았다고. 승진턱을 내느라 여러 사람들에게 술을 사느라 요즘 술자리가 많았더라고. 그래서 돈이 없어 어머님 생신에 고기를 풍족하게 주문하지 못한 모양이라고.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 않은 아주버님 이야기를 아버님은 끝도 없이 쏟아내셨다.

 나에게 큰집은 나와는 상관없는 아버님의 큰아들일 뿐이다. 어머님의 병치례와 연세가 들수록 심해지는 아버님의 약한 마음들을 둘째인 신랑과 나는 고스란히 맡아야 했다. 회사일로 바쁘다고 하기에 아주버님의 부재는 오래되고 큰 것이었고 형님 또한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큰집의 이야기를 아버님을 통해서 듣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늘어놓은 푸념 속에는 왜 이기적인 사람들은 승진도 잘하고 돈도 잘 버냐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기가 불편했던 데에는 나의 불투명한 취업준비가 한몫을 했다. 남편이라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닌데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들을 여기저기 펼쳐놓았다. 그렇게 마음속에 습기가 차고 나쁜 균들이 자리 잡았다. 누군가와 비교를 하고 나를 자책하는 마음. 저 사람의 좋은 처지와 나의 안 좋은 처지를 저울질하는 마음. 인과응보라는 것이 현실 속에 없다면 착하게 살 필요도 없고 열심히 살 필요도 없다는 삐뚤어진 의식. 자신의 마음이 불안하고 현실이 편하지 않을수록 어두운 생각은 금세 나를 집어삼킨다. 긍정의 여왕이었던 나는 어느새 세상 시니컬한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먹지 못하는 식빵을 과감하게 버리러 밖에 나가는 것처럼 마음속에도 버릴 것들은 처분해야 한다. 다시 새로운 곳에 원서를 넣고 소득 없는 전화들을 받아야 한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잠시 잠깐 변해버린 내 모습도 그 또한 자신이라고 받아들였다. 나는 쪼잔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자의식이 낮은 사람이었지만 힘들수록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썩은 식빵을 도려내듯 마음이 상한 부분들을 뜯어내고 나니 어제저녁부터 모르는 번호들로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취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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