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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에디터 Apr 07. 2017

아재의 추억

아저씨는 어디로 가야하죠?


작년 '아재'라는 커뮤니티를 만들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딴은 의욕적이었다. 첫 직장에서 연을 맺고 비슷한 시기 백수가 된 세 사람은 이 땅의 중년 남성들이 즐길 만한 온라인 공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닿았다. 당시 각종 매체에서는 청년은 지났지만 중년으로 묶기에는 애매한 존재, '아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를 낮추어 부르는 듯한 이 경상도 방언은 '아재개그' '아재파탈' 등 파생어를 낳으며 기존 아저씨와는 점차 다른 맥락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상당 부분 미디어가 낳은 허구에 가까울지라도 세대와 단절된 채 고단하게 늙어버린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불펜과 보배드림 아재들이 좋아할 만한 짤도 많이 저장해 뒀었고.



무언가 규정짓기 좋아했던 나는

'아재 10계명'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1. 아재라고 불리는 것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2. 아재 개그는 남을 공격하기보다 자신을 낮출 때 빛을 발한다.

3. 당신에게도 한때 취미가 있었다. 덕업 일치의 삶을 시작해보자.

4. 넥타이와 양말에 신경 쓰자. 작은 투자로 빛나는 취향을 드러낼 수 있다.

5. 화장실을 이용한 뒤 꼭 손을 씻고 나오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6. 선크림, 치실, 좌욕기를 곁에 두자. 백세 인생이라 하지 않는가.

7. 정치를 쉽게 혐오하지 말자. 정치는 늘 가까이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8.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말자. 당신이 아는 것은 남들도 알고 있다.

9. 중요하니까 두 번.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말자.

10. 아재 홈페이지를 ‘즐겨찾기’해 인생을 즐기자.


눈여겨 볼 아재들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태형 현대카드 부회장, 배우 심형탁, 낭만닥터 배상준 씨 등을 떠올렸다.


만들었다면 잘 되었을까. 우리끼리 재미는 있었을 듯. 이후 셋은 돈 되는 정부 용역을 수주해 일하게 되었고 아재 도메인(ajae.co.kr/)은 후이즈에 고이 잠들어 있다. 필요하신 분들에게 염가 대방출!


최근 널리 유명하진 않지만 기억해 두어도 좋을 중년 남성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자주 겹친다. '중년탐구생활'이란 이름으로 묶어보려고 하는 데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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