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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명 Jan 18. 2017

[그림으로 읽는 이야기]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4

마을을 떠나다

소녀는 말뚝을 뽑아버릴 수 있으면서도 말뚝을 벗어나지 못하는 코끼리가 한심했어요.


소녀는 깊은 땅 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파냈어요.

7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소녀의 꿈은 녹슬었지만 여전히 반짝거렸어요.


마을 사람들의 말은 과연 옳았어요.

꿈을 파내니 소녀는 더욱 불행해졌어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곁에 두고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소녀는 마을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해졌어요.

매일 밤 마을을 떠나는 상상을 하다 잠들었어요.

그렇게 잠들면 꿈을 꾸었어요.

끝없이 펼쳐진 돌로 된 벽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야 했고 문은 보이지 않았어요.



illust by 명은주



꽃이 피는 계절이 찾아왔어요.

소녀의 마을에는 꽃나무들이 있었어요.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던 꽃나무들이었는데, 행복하지 않은 소녀의 눈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어요.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꽃나무들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는데, 그늘에서 자라는 나무는 비실비실 꽃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어요.

그늘에서 태어난 나무는 평생에 걸쳐서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할 것이었어요.


소녀는 마음이 아파서 앙상한 꽃나무에게 다가갔어요.


"꽃나무야, 너는 어쩌다 이런 곳에서 태어났니."


꽃나무가 말했어요.


"태어난 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 나무의 운명인걸.

 그렇지만 소녀야, 네 얼굴에도 그늘이 져 있구나."


"내게는 내일에의 희망이 없어."


"그러면 희망을 찾아 떠나보렴.

 북극성이 보이는 방향으로 한참 걷다 보면 반짝거리는 마을이 나온대.

 <꿈을 좇는 자들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

 그 마을에서는 꿈을 좇는 사람들이 밤에는 설렘에 가득 차서 잠을 청하고, 아침에 희망을 품고 일어난대.

 그 마을로 가보렴, 소녀야.


"너처럼 내게도 이 곳은 나의 전부인 세계야.

 난 이 곳을 떠날 수 없어."


"인간 소녀야, 나와는 달리 넌 두 발이 있지 않니.

 걸을 수 있는 두 발이 있는데 왜 떠날 수 없다는 거니."



illust by 명은주



그날 밤 소녀는 <꿈을 좇는 자들의 마을>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꽃나무의 말이 맞았어요.

소녀는 떠날 수 있었어요.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활짝 핀 꽃나무들처럼 꽃을 피우고 싶었어요.


다음날 새벽, 소녀는 다부지게 결의를 다지며 마을을 떠났어요.



illust by 명은주



 [바다로 가고 싶은 코끼리 #5]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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