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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Jun 26. 2019

기술, 인간, 그리고 관계

이면 아닌 양면을 다룬 <블랙 미러> 시즌5에 대한 감상

스포일러: 보통





 넷플릭스는 플랫폼과 자체 컨텐츠로 승부하는 구독 결제 서비스 중 하나다. 달리 말해서 구독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자체 컨텐츠도 바로 그 플랫폼도 아무 의미가 없는데, 최근 넷플릭스가 스스로 만들어낸 울타리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듯하다. 브런치와의 콜라보 소식에 더불어 연남동에 설치된 <기묘한 이야기> 팝업존까지. 새롭게 출시될 거대 기업들의 OTT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한 선두주자의 행보가 재밌어지는 요즘이다.


 영화관을 잊게 만든 VOD와 VOD를 잊게 만든 넷플릭스. 사실은 넷플릭스도 VOD도 영화관도 모두 기술의 산물이다. 기술이라는 건 소비의 방식을 변하게 만들고, 소비라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곧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난 2017년 5월 19일 00시를 기억한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옥자>의 썸네일을 확인하던 바로 그 순간을!





 비디오 산업을 놓고 보자면 기술의 중심에는 넷플릭스가 있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컨텐츠 <블랙 미러>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시리즈다. 이번 시즌에는 VR로 즐기는 게임과 AR로 즐기는 콘서트, 중독성 있는 소셜 미디어와 고성능 인공 지능 로봇과 같이 현존하는 기술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가 당장 직면해있는 쟁점들과의 거리는 더욱 좁아졌다. 시즌5는 어쩐지 가까운 미래보다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블랙 미러> 시즌5 2화 <스미더린> 스틸 컷

 가장 재밌었던 건 단연 2화 <스미더린>.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자신의 딸 크리스틴이 자살한 이유를 알기 위해 소셜미디어 계정에 접근을 시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사연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는 것. 이러한 행위가 곧 대상화되어 있지 않지만 기술을 어느 정도 대체제로 여기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레이철, 잭, 애슐리 투>에서 새로운 친구보다 인공 지능 로봇과 지내길 선호하는 전학생 레이철의 모습은, 유튜버와 인플루언서와의 소통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모습 마저 연상케 했다.


<블랙 미러> 시즌5 1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스틸 컷

 1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예상을 빗나간 엔딩은 몇 일 밤 동안 대화 주제가 될 정도로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람보다 질서가 우선인 시절에 생겨난 문화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 의외성이 만족스러웠지만.


 데이팅 앱 틴더가 ‘오픈 릴레이션쉽’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듯 기술이 불러낸 새로운 인간관계 대니와 테오의 라이프스타일을 진보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결혼 생활을 가까스로 이어나가던(이런 장면이 클리셰로 느껴질 정도니 결혼 생활이 지루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명한가) 대니와 테오의 이전과 비교해보았을 때 기술 이후의 삶은 결코 비난의 대상만은 아닌 듯했다.


<블랙 미러> 시즌5 3화 <레이철, 잭, 애슐리 투> 스틸 컷

 칼은 게임에서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얻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레이철, 잭, 애슐리 투>의 애슐리는 화학적 코마 상태에 빠져 음악을 추출당한다. <스미더린>은 소셜 미디어로 가까운 지인을 잃은 인물과 지인의 이면을 알게 된 인물을 동시에 다루고 있으며, 기술에 분노하던 택시 기사는 기술을 통하여 명상을 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다면 기술은 과연 이로운가? 기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바랄 수 없어 염원하는 세상과 이룰 수 있어 추구하는 세상. 두 세상 사이에 기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염원을 낭만으로 생각하며 ‘아날로그 감성’을 외치고, 누군가는 추구를 덕목으로 여기며 ‘얼리어답더’를 자처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에 대한 가치 판단은 오로지 개개인의 몫이다. 기술에 좋고 나쁨은 없으며 기술은 그 자체로 기술일 뿐이다.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1535 엄지 세대에게 전화 공포증이 생겼다고 해서 카톡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시즌5에 접어든 <블랙 미러>의 색깔이 어딘가 달라졌다고 느꼈다면 그건 기술의 이면이 아닌 양면을 다루는 작품들이 시즌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기술을 취하는 사람과 취하지 않는 사람 모두가 공존하기를 <블랙 미러>는, 아니 넷플릭스는 염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멀티플렉스여, 더 이상 넷플릭스를 생태계 파괴자 취급하지 마시길!




이미지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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