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닮은 우리들을 위하여
지하철을 타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고 있는 그녀는 우울을 숙명처럼 머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새순처럼 부드럽고 맑은 구석이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녀의 오늘 발걸음은 유난히 무겁다. 왕십리에서 자리가 나자마자 픽-하고 자리에 쏟아지듯 앉는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떠오른 생각 풍선들이 어지럽다.
연필 잡다가 생긴 손가락의 굳은 살을 괜히 조몰락거리어보는 그녀. 그러다 그 위로 새로이 피어난 생각 구름.
'손가락의 굳은 살은 배길대로 배겨서
꼬집어도 아프지 않고
깨물어도 아프지 않고.
마음에도 굳은살이 좀 박였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은 너무 말랑말랑해서
누가 콕 찌르면 고대로 자국으로 남고
아주 잠시 불었던 봄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흔적이 남는다.
마음이 좀 단단해야 남 눈치 안 보고 잘 산다는데,
사회생활도 잘 한다던데, '
그녀는 온몸이 들썩이도록 큰 한숨을 내쉰다.
건너편에 앉아 책을 보던 나는 잠시 시선을 그녀에게로 향한다.
나도 괜히 마음이 짠해지려고 하다가,
그러다,
무심코 들여다본
그녀 마음에는
여기저기 상처 자국도 많지만
간간이 꽃도 심겨있고 나무도 자라고
작은 씨앗도 심겨있고
누군가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맑은 샘도 있다.
예민하지만 부드러운 그녀의 마음에는
생명들이 산다.
이윽고 내릴 역이 다가워오자 코 끝에 걸려있던 안경을 다시 한번 쓸어 올린다.
그녀 속의 눈물도, 고단함도 달라진 건 없다.
그녀가 만지작대고 있는 손가락의 굳은살은 여전히 강인하다.
그녀는 아직 모르겠지.
그녀 마음속의 그 생명들이, 그 예민함이,
바로 그 고운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는 '굳은살'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