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웅 Sep 14. 2020

교육의 미래

제목은 너무 거창해 부담스럽지만 다른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페친 중의 한 분이 대학 교육의 미래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물으셨다. 길게 댓글을 쓴 김에 브런치에도 남기기로 하였다. 쓰고 보니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이다.


1. 필요한 지식들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단순히 지식 습득을 위한 교육을 하기에는 놓치게 되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지식도 지식이지만 배운 지식을 다른 콘텍스트로 전이(Learning Transfer)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령 이런 거죠.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별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언어 습득을 가능케하는 계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스킬을 체화시키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21세기 역량 (21st Century Competencies)"이라는 담론입니다. 학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흔히들 협업(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 디지털리터러시(Digital Literacy), Citizenship(시민성),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성(Creativity), 그리고 생산성(Productivity) 등을 이러한 역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량들을 계발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들과 연구들을 하고 있습니다 (Voogt et al., 2013).

2. "전 세계의 온라인 강의를 다 들을 수 있는데 대학 수업이 무슨 소용이냐" 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지 않습니까?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예측을 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공부를 엄청 많이 하고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는 겁니다. 이미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메타인지가 충분히 숙달된 분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배우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Rapport, 공간, 사회적 현존감(Social Presence), 동료(Peer) 등의 맥락적 요소들이 반영되지 않을 때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분명 나온다는 거죠. 실제로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학습으로 변환되면서 중위권이 사라지고 상위권과 하위권의 학력 격차가 커졌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Lecture-based system에서 벗어난 온라인 환경에 걸맞은 수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거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교수설계자/학습설계자 (Instructional Designer/Learning Designer)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미국 대학들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수업설계를 도와주는 교수설계자/학습설계자들을 엄청 많이 고용합니다. 큰 학교들의 경우 대학 중앙조직 내에도 부서가 있고 단과별로도 개별 조직들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프로그램 전담 설계자들은 또 따로 있고요. 앞으로 단순한 교수설계뿐 아니라 학습환경을 전반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학습설계자들의 니즈가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산업논리로 인해 기술이 교육을 이끌어 가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가 뭔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결국에는 실제 학습환경에 어떻게 적절하게 적용하는가가 관건입니다. 모바일 학습한다고 아이패드 하나씩 쥐어주고 끝이라든지, 아니면 온라인 학습이라고 강의실에서 하는 강의를 똑같이 카메라로 찍기만 해서 옮긴다든지 이런 게 기술의 적용은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각 기술의 특성을 고민하고 그에 따른 기술의 어포던스에 맞는 학습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제공해주기가 불가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말 학교 시스템이 붕괴되어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죠.

4. 기술 격차(Technology Divide)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도 존재하고 한 국가 내에서도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모두에게 Accessible한 시스템 및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적인 격차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고려의 측면에서의 Accessilbity나 유니버설 학습디자인 등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5. 저는 Informal Learning을 주로 연구하는데 학교 외의 영역에서 어떤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필요합니다. 학습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학습과정들을 실생활과 정규 교육과 연결하는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자연학습을 예로 들자면 학교에서 배운 자연법칙을 실제 자연에서 찾아보게 하고 관찰 맥락에 맞는 정보들을 즉각 즉각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제공해 주는 겁니다. 실제 관찰에 정보라는 레이어를 추가하는 거죠. 증강현실을 통해 계절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든지 아니면 꽃 없는 식물의 꽃이 피는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해서 실제 관찰과 다른 모습도 관찰할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겠습니다. 또 카메라와 앱 등을 이용해 오늘 관찰한 자연 시스템을 아우를 수 있는 나만의 conceptual diagram을 그려보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학습을 풀어갈 수 있으면 수업에서 들은 과학 지식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게 됩니다. 머릿속의 지식이 더 실체화되기도 하고 실제 관찰하고 상황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좀 더 과학적인 행위들을 체득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야기가 좀 샜는데 결국에는 기술을 잘 알고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학생들은 어떻게 학습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6. 다만 혁신적인(?) 교육 방식을 고민하고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Scalability인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게 사회 전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노력들이 정책적/경제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뭐 이런 고민들이 안 나올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수업 위주의 교육환경의 형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7. 쓰고 보니 대학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많아졌는데, 지금 EBS를 비롯한 강의 스타일에 온라인 교육이 굉장히 잘 이루어지고 있는 데에는 교육의 목적이 수능이라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일방향 강의 위주의 대학교육이 정말 효과적일지는 재고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제가 이 쪽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실 Distance Learning이 새로운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관련한 많은 노하우들이 쌓여 있고 학문적으로 꽤나 정립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 새로운 혁신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어떠한 노력들이 있었고 어떤 이론들이 통용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 학자들도 그러한 지식들을 적극적으로 알릴(disseminate)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말입니다.

9. 혁신과 기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Fundamental하게 고려해야 할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수많은 버즈워드 속에서 학습이라는 핵심적인 가치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고 혁신과 기술은 이것들을 어떻게 서포트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관련 학자들이 해야 할 노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10. 사족으로 푸념을 하나 하자면 많은 교육 연구자들이 어떤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지만 긴 노고 끝에 정제한 이론들이 듣고 보면 굉장히 당연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육공학과 학습과학 (러닝사이언스): 세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