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생일, 내가 엄마가 되는날.
예상치 못한 일은 없었다. 모든 게 예정되어 있었고 그 계획에 따라 움직였던 것뿐이다.
다행히 수술 당일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출산가방을 들고 척척 걸어 병원으로 들어갔다.
별 문제가 없다면 정해진 시간에 수술을 시작하고, 아기의 얼굴을 보겠지. 회복을 위해 입원을 할 테고 천국이라는 조리원에 들어 갈 거야, 그 뒤에는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겠어. 불어난 배가 너무 무겁고 소양증 때문에 가려운 다리는 밤마다 긁다 피가 터져서 죽겠으니까, 낳으면 더 힘들다고 해도 얼른 디데이가 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분만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술 부위도 예쁘댔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아기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회복이 빠르도록 열심히 몸을 움직여주는 일이었다.
수술 3일 째, 유일한 보호자였던 남편이 급한 일로 출근을 해야 했다. 통증은 있었지만 전날 보다는 훨씬 괜찮았기에 웃는 얼굴로 다녀오라고 말해줬었다.
그 날 밤 10시쯤, 가슴이 땡땡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 모유가 차는구나.
내일쯤이면 모유수유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자려는데,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거다. 어기적어기적 신생아실로 내려가 유축기를 빌려왔다. 고요한 병실, 사진으로만 잠깐 봤던 기계와 부품을 들고 주섬거리며 코드를 꽃았다. 가슴에 깔때기를 갖다 댔다. 지잉- 추우- , 지잉- 추우-.
첫 유축은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고통을 참아가며 검색해 얻은 육아 선배들의 조언처럼 유축을 하니 통증이 차츰 줄어들었고, 아,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시원한 감각과 동시에 왠지 모를 우울감이 모래 폭풍처럼 덮치기 시작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이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불편하게 고개를 숙여 모유가 나오는 걸 쳐다보고 있는 내 꼴에 참을 수 없는 거북함이 몰려왔다. 내 젖을 짜내고 있는 유축기를 보고 있자니 울컥대는 슬픔이 솟아올랐다. 임신기간 동안 모유수유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고귀하고 아름다운 행위라고 들었는데 대체 이 나쁜 기분은 뭘까. 왜 난 지금 내 모습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까. 이것이 달라진 내 삶의 서막인걸까, 나만 이런가, 나는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었나.?
창밖으로는 달이 떠 있었고, 지잉- 추우-하는 유축기 소리와 함께 그 날의 순간은 짧은 영상이 되어 머릿속에 아주 깊게 박혔다.
모유수유 거부감으로 시작된 우울은 조리원에서도 내내 계속됐다.
그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데 직원들은 첫 날부터 모유수유를 강조했다. “애착형성”이라는 공격에 “단유”라는 말로 방어하자 침대 위 아기의 이름표 옆에 “단유”가 적힌 카드가 크게 붙었다.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여기 있는 동안은 모유수유 할 거라고, 저것 좀 떼 달라고 했다. 이제 나의 몸도 내 것이 아니구나.
시작은 모유수유였지만 우울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몸 회복은 가능할지 몰라도 마음 회복은 되지 않았던 그 곳, 이미 시작부터 어긋났으니 가벼울 수 있는 생각도 한없이 무거워졌다. 호르몬 새끼의 농간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도 별 소용이 없었다. 남편도 들어오지 못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함께 있는 시간, 아기가 내내 울었던 날이면 아기를 보내고 나도 엉엉 울었다.
아. 저 생명이 나만 보고 운다.
3kg 남짓밖에 안되는 게 꼬물락 거리면서 엄마를 찾는다.
존재가 거대한 산처럼 다가왔다.
생각보다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자식으로서의 모녀관계와는 달랐다. 그 관계는 그들이 나를 태어나게 한 거지만 쟤는 나 때문에 태어났다.
아기의 인생 전체를 조절할 순 없겠지만 지금부터 상당시간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 아이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관계에서 내 역할은 너무도 중요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각오를 하고 낳았어도 이런데 어떻게 결혼하고 때가 되었으니 낳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는 건가,
첫째가 외로워서 둘째를 낳아준 다는 말을 겁도 없이 하는 걸까.
그 때부터였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엄마는 여자로서도 살아야 한다는 그 상투적인 말을 곰곰이 씹어본 것이.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은 나 자신의 인생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20kg가 불어나며 무너져버린 어깨선, 늘어진 뱃살, 검은실이 보이는 수술흉터, 실밥 만큼이나 선명한 임신선, 사라져버린 근육들.
천천히 몸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노력만큼 마음도 단련이 필요했다.
나는 여행했었다.
마음이 오므라들 만큼 감동이었던 순간은 언제나 떠남의 길 위였다.
힘차게 살아내야 할 날들에 바람을 불게 한 것도 그곳이었고, 그 길이 오롯한 즐김이 아니라 노동이 섞인 하나의 프로젝트였을 때도 마냥 좋았다.
여행은 간접적인 치유다. 낯선 공간 속에 살아있는 나의 존재를 분단위로 깨닫는다.
모든 생각, 모든 결정의 주체가 되어 여정을 완성시켜 나간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아줘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 누구도 나의 것에 관여할 수 없다.
온몸으로 해방감을 느끼는 이 행위가 좋아 혼자서도 수도 없이 여행했다.
여행만큼은 놓지 않기로 했다. 답답한 공기가 잠깐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