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시인 Apr 05. 2022

달맞이꽃

#


그는 전화를 받으러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가방만 남긴 채.


 그의 가방을 돌려줘야겠다 생각해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이상하게  시간 전까지 통화를 했던 그의 번호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기계음이 대신 답을 해주었다.


‘없는 번호입니다.’


 나는 그의 단서를  찾기 위해 어쩔  없이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가방 속에서는 투박한 수첩이 들어있었다. 훔쳐본다는 마음이 들어 쉽게 펼칠  없었지만 혹시라도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명분으로 두어 조심스럽게 수첩을 펼쳐보았다.


 수첩의 첫 장에는 우리가 알게 된 첫날부터 적혀있었다. 어른 같은 그의 글씨체가 칸을 빼곡히 채워 우리와 그의 감정을 묘사해나갔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신기하게도 오늘날짜가 적혀있었고 우리가 걸었던 길과 나누었던 말들 그리고 먹고 마셨던 음식까지  묘사돼있었다. 내가 혼자 남겨졌다는 것까지 표현되고 나서야 문장이 끝이 났다. 의아한 마음에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그는 없었다. 헛헛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수첩을 보았다. 페이지를 무심코 넘겼는데, 다음 페이지는 그로부터  달이 지난 다가오지도 않은 날짜가 적혀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에게 연락이 왔고, 그는 가방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몇 번이고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간만에 찾아오는 애타는 마음 때문인지 일상과 먼 관계 때문인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외롭지 않을 때도 종종 그가 생각났다. 그와 겪은 하루는 어렸을 때 분명 겪었던 장면과 순간들이었지만 방학 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어른이 돼서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소슬히   지난 나무가 되어 이제는 피지 않을 꽃을 뒤로하고 

분주하게 세월을 맞는다. 가만히 흔적을 바라본다.

연연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밤중에 어쩌다  달맞이꽃 같던 

그날의 그가 더 생각이 난다.


처음  꽃도 아닌데 유달리  생각이 나는 것은

세월로 꽁꽁 싸매 왔던 마음이 유유히 풀어지고 있는 광경 때문이 아닐까.



그는 앞을 내다보기라도 하듯이 다가오지도 않은 날의 일기를 적었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그를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가 놓고 간 가방과 수첩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Apocalypsex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