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한켠, 입지 못하고 걸어만 둔 조리복을 꺼내 입은 순간
주방 한켠에 셰프복 한 벌이 걸려 있다.
빳빳하게 다려진 새 옷, 주름하나 없이 가지런한 채로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셰프복이 오래도록 거기 있었다. 그 옷은 마치 내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듯했고, 나는 매일 그 앞을 지나며 스스로의 마음을 살폈다.
‘이 옷을 내가 입어도 되는 걸까?’
나는 스노우보드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던 사람이었다. 기획, 제작, 마케팅, 고객관리까지 하나하나 부딪히며 즐겁게 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리는 좋아하거나 잘했던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꽤 무심했다. 요리라고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을때 고기 굽는 일이 전부였다. 타지 않게 지글지글 맛있게 익어가는 타이밍에 집착했고, 까맣게 타들어가는 고기를 보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정도였다. 누구나처럼 맛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모여 함께 먹고 즐기는 분위기를 좋아했던 나였다. 때론 상한 음식을 먹고도 “오? 새콤하고 톡 쏘는데?” 라며 넘기기도 했던 사람이다.
음식에 대해선 애정보다는 무지가 더 컸고, 공부는 커녕 감각조차 없던 내가 주방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였을까 그 셰프복을 입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유니폼일지 몰라도, 나에겐 미슐랭의 별처럼 쉽게 받을 수 없는 인정의 상징 같았다. 생각해보면, 직업인의 옷에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는 무게가 실려있다. 소방관의 방화복, 판사의 법복, 의사의 수술복 등 그 옷들은 단지 직업을 드러내는 유니폼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걸맞은 전문성과 윤리 의식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옷이기도 하다. 입는 순간, 스스로 그 역할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이 따라붙는 옷. 셰프복도 나에게는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5시간 이상 끓이고 졸이며 만드는 라구 소스를 일주일에 한 번씩 수년을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셰프복을 입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안되는 똑같은 메뉴를 수천번 반복하며 결국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날 이후, 주방을 마주하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식재료 하나하나를 대하는 태도,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습관, 공부하고, 시도하고, 도전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셰프복은 나에게 자부심보다는 책임감을 안겨주는 옷이었다. 겉으로는 가볍고 편안한 원단의 옷이지만, 입고 나면 늘 무게가 느껴졌다. 아마 그걸 알기에, 쉽게 입지 못했던 것 같다.
몇 가지 되지 않는 메뉴를 8년 가까이 고집하며, 더 나은 맛, 더 완성도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반복의 시간을 살아왔다. 10년쯤 되면 이 옷을 조금은 편하게 입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내가 입은 옷, 그 셰프복이 나를 바꿔놓은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수술과 회복의 시간으로 잠시 주방을 떠나 있지만, 나는 다시 셰프복을 입을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책임감뿐 아니라, 그 안에 자부심과 즐거움도 함께 담아 입고 싶다. 다시 주방에 서는 순간, 처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차분히 그 무게를 마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