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익숙하지만 때로는 혼자가 버거운 당신에게.
어제 오후 8시 즈음,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봄이 오고 있지만 해가 떠난 자리의 밤은 제법 쌀쌀했다. 단추로 단단히 코트를 잠그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던 중 문득 친구에게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평소에 가까운 친구들과 전화, 메시지를 자주 하지 않는 편인데 가끔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날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마음이 어지러울 때.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기 전에 통화가 가능할만한 최측근들을 떠올려봤다. 'S는 지금쯤이면 일이 끝나고 녹초가 돼서 집으로 이동 중일 것 같고.. D는 남편이랑 같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고.. P는 아이 보고 있을 테고.. K는 아직 회사이거나 아니면 데이트 중이겠지.. 에잇.. 아무도 없네.'
가까운 친구들의 일상을 어렴풋이 떠올려보니 지금 여유 있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물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먼저 보내 잠시 통화를 할 수 있냐고 하면 흔쾌히 시간을 만들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들의 평온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어차피 친구들이랑 전화한다고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뭐..'라는 마음 반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하기 전에 이와 같은 패턴으로 생각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특히 3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친구들 각자 삶의 모양이 모두 바뀌었기 때문에 갑자기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상황이 이제는 너무 익숙하면서도 어떤 날은 "편하게 전화할 친구 하나 없네.."라며 유독 '외롭다'라고 느끼는 날도 있다. 바로 어제처럼.
나도 10대, 20대 때는 친구들과 연락을 정말 자주 했었다. 10대 때는 불과 2시간 전에 헤어진 친구와 집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또 아무런 용건 없이 아무런 의미 없이 이어지는 카톡방도 여러 개였고, 그러한 전화도 많이 주고받았었다.
그러던 중 20대 중후반이 지나자 친구들은 서서히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가끔 문자는 했지만 전화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시간을 내어 가끔 만나더라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때 장기 여행을 떠났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꿈과 글, 생계를 위해 살아가던 때였기에 결혼을 한 친구들과 나의 삶은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들었다.
또한 2년 가까이 떠났던 장기여행과 워홀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5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혼자 준비하고, 실행하고, 감당해 내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러한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서 소소한 나의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말하는 것이 어색해졌달까. 아니, 나는 혼자인 이 모습이 당연해졌다.
평소에 친구들은 내게 말한다.
"넌 원래 외로워도 잘 이겨내고 혼자 꿋꿋하게 잘 해내잖아."
"넌 냉정할 땐 냉정하잖아. 흔들려도 금방 돌아오니까 잘할 거야."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다. 나의 외로움을 사람의 목소리로 공감받고 싶은 날이 있고, 나의 흔들림을 사람의 감성으로 이해받고 싶은 날이 있다. 물론 어떤 문제이든 결정도, 책임도 다 내 몫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에 30분 남짓한 점 같은 시간만큼은 결정, 책임 같은 것은 잊고 싶은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의 온기를 휴대폰 너머로나마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을 지각하고 싶은 것이다.
집으로 가는 내내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말까 계속 고민만 할 뿐 아무에게도 전화도, 메시지도 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나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질문하고, 혼잣말을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불현듯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읽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남녀 관계를 넘어서서 우리는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사람과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야 사람들이니까. 물론 나의 감정, 나의 존재를 사람을 통해 해결하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사람을 경계하고, 외면하는 것도 위험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외로워질 용기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외롭다고 말할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혼자였다가 함께였다가를 반복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냈던 용기가 외로워질 용기였다면,
앞으로는 외롭다고 말할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말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를, 나란 사람을 보아주지 않을 테니까.
알랭 드 보통의 글처럼, 어쩌면 나는 영영 온전히 살아있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저로서 존재하며 저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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