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거대한 담요 속으로 숨고 싶은 어느 30대의 일기장
"슬기야. 자?"
새벽 1시, 나를 찾는 카톡이 하나 왔다. 친구 J였다. 평소에 친구들과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내게 이 시간에 메시지가 왔다는 건 '뭔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곧장 안 자고 있다고, 무슨 일이 있냐고 답했다. 그러자 J는 '무슨 일'에 대한 답부터 아주 간결하게 말했다.
"나 이별했어."
이어서 J는 이번주에 만날 수 있냐며 조심스레 내 일정을 물어봤다. '이별'이라는 두 글자에 나는 재빠르게 스케줄 어플을 확인했다.
"너만 가능하면 내일도 괜찮아. 그리고 금요일, 일요일도 가능하고!"
바로 다음날, J와 나는 만났다. 얼굴이 핼쑥해진 J는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활짝 웃어 보였다. '괜찮은 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일단 우리는 예약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지하에 위치한 작은 선술집이었다. 간단한 테이블 세팅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J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다.
"J야. 어떻게 된 거야..? 많이 힘들지.. 지금.."
사실 J의 이별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사귀는 내내 J는 만나고 있는 사람과 고민이 많다고 했었다. 고민의 이유는 엄청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굳이 J가 헤어진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미래'였다.
연애를 시작했을 때 J는 결혼과 같은 미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연애가 길어질수록 J의 남자친구는 결혼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J는 현재 결혼보다는 일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했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J가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둘은 그저 미래를 그리는 순서와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J의 연애 시작-과정-끝을 모두 옆에서 지켜봐서 그런지 마음이 참 아팠다. 그 둘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기에 '결혼, 미래' 그런 게 다 뭔지.. 어렵고 밉기만 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결혼, 미래' 앞에서는 한 없이 머리가 무거워지는 30대 중반의 한 사람이기에 뾰족한 정답은 말할 수 없었다. 그저 J의 빈 소주잔만 채워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들이 30대 중반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J에게 물었다.
"근데.. 만약에 네가 20대 때 이 분이랑 연애를 했다면 이렇게 헤어졌을까..? 그랬다면 조금 더 연애에만 집중하면서 오래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끝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냥 이런 생각이 드네 갑자기."
J는 잠시 고개를 천장을 향해 올렸다가 내리고는 천천히 답했다.
"음.. 나도 그런 생각 많이 해봤어. 우리가 조금 더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더 오래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근데 이게 맞는 것 같아."
J는 긴 한숨을 쉬고 이어서 말했다.
"그 사람이랑 나는 이렇게 헤어질 인연이었던 것 같아."
"헤어질 인연이었던 것 같아."라는 한 마디가 내 가슴에 날카롭게 새겨졌다.
'인연.. 인연이라..'
맞다. 우리는 사랑의 시작, 과정, 그 끝에도 모두 이 단어를 붙인다.
"너랑 나는 어떻게든 만날 인연이었나 봐."
"우리는 사랑할 인연이었던 게 틀림없어."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와 같이.
우리는 생판 모르던 나와 그 사람이 만나게 된 것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게 된 것도, 이유가 어찌 됐든 헤어짐을 결심하게 된 것도 모두 다 '인연'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해가 가지 않던 너와 나의 만남에도, 사랑에도, 이별에도 그럴듯한 이유가 생겨나는 것 같기 때문에. 이 짧디 짧은 한 단어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관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인연'이라는 두 글자로만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만의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너를 알게 된 이유, 네가 나에게 끌렸던 이유, 내가 너를 사랑했던 이유, 네가 나를 사랑했던 이유, 우리가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이유, 우리가 사랑을 포기했던 이유.
그렇다면 이렇게 명확한 이유가 있음에도 우리는 왜 '인연'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덮으려고 할까?
어떤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에 반대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동시에 우리가 헤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 또한 강력하게 존재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51% VS 49%의 이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 선택한 후에도 우리는 계속 그 이유들로부터 괴롭힘을 받는다. 예상보다 그 괴롭힘은 오래가고 또 아프다. 그때 우리는 강력한 힘을 지닌 '인연'이라는 단어를 찾고 명확한 이유들은 보이지 않게 덮어버린다.
그러고 보니 30대의 연애 앞에서, 특히 이별을 한 후에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됐다. 그리고 이별했을 때뿐만 아니라 사람, 직장, 일 등의 넓은 분야에 '인연'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 그 이유는 조금 슬프지만 그만큼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 아닐까.
'인연'이라는 말은 이 삶을 살며 때때로 필요한 아주 크고 두꺼운 담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담요로 상황을 덮으면 너무 아프지 않게, 제법 따뜻하게 받아들여지니까. 긴 설명 필요 없이 가장 그럴듯하게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이니까. 하지만 이 담요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 아픔의 이유를 가려줄 뿐 없애주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가슴 아픈 말이기도 하다.
정말 인연을 따로 있는 걸까.
J와 그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걸까.
어쩌면 J의 상대방 분도 '인연'이라는 말로 당장의 아픔을 덮어버리고, 아주 작은 희망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이 기다림의 이유를 '인연'에서 찾지는 않았을까.
글쎄. 이 모든 것이 다 인연이고 타이밍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말로 급하게 마침표를 찍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진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연이라는 말 뒤로 숨기고 싶은 진심이 있는 건 아닌지..'
맞다. 이건 J에게 하는 말도 아니고, J의 상대방 분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바로 나한테 하는 말이다.
나는 늘 그래왔으니까.
나의 진심보다 나의 아픔을 먼저 걱정하고 '인연', '운명'과 같은 말 뒤에 숨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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