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제 더 이상 계좌에 숫자는 잃고 싶지 않아요.
5년 전 '글'로 먹고살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 바로 2020년 가을~2022년 봄, 제주살이를 할 때였다. 그때는 단순히 '돈'걱정이 아니라 불면과 위통에 시달리며 월세, 생활비 등의 '생계'를 고민해야 했었다. 그래도 한 달, 한 달 꾸역꾸역 버티다 보니 글쓰기로만 먹고살자는 목표를 1년 5개월 동안 이뤄낼 수 있었다.
제주를 떠난 지 이제는 2년이 지났기에 치열하고도 처절했던 제주 생존기를 이렇게 몇 줄로 덤덤하게 적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그때의 하루하루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당장 위가 쓰려올 정도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불안한 경제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본가에서 지내고 있고, 그때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놓았기에 생계에 대한 압박감은 미세하게 가벼워졌다.
최근 3년 동안의 나의 주 파이프라인은 글쓰기 클래스이다. 2022년부터 클래스를 찾아주시는 수강생분들이 차근차근 늘어났고, 2023년에는 클래스 운영을 하고 나서 모든 면에서 최고치를 찍었다. 글을 삶 한가운데 놓고 살아간 이후로, 계좌에 '플러스 숫자 (수입)'가 '마이너스 숫자 (지출)'보다 크게 유지된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작년에는 '생계' 걱정을 거의 하지 않은 역사적인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프리랜서라는, 아니.. 인생은 원래 '예측불가'라고 하지 않는가. 작년 겨울,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당시에는 1 : 1 개인 클래스로 여러 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다수의 수강생분들이 한꺼번에 클래스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개인 클래스의 경우 1년 가까이 장기간 수강하신 분들이기에 어떤 중요한 일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진심으로 수강생분들이 하시는 일들이 잘 되길 기원하며 작별을 고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코 앞에 닥친 불안정한 수입 상황을 바꿔야 했다.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짜두었던 큰 계획들을 변경했다. 예전부터 준비했던 그룹 클래스를 다시 기획하고 홍보를 했다. 또, 잠시 쉬었던 크몽에서의 전문가 활동도 급히 재개했다.
프리랜서라는 이 세계는 참 알면 알수록 어렵다. 어느 달은 힘 빼고 있었는데 나를 많이 찾아주고, 또 어느 달은 "나 좀 봐주세요~" 여기저기 손을 흔들고 큰 목소리로 말해도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다. 올해 초가 바로 후자였다. 절실함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히고 나를 봐달라고 애원했지만 나를 보아주는 이들은 없었다.
기어코 올해 1~2월에는 예전 제주살이 때의 단골손님인 불면과 위통이 다시 찾아왔다. 이렇게 불안했던 이유 중 하나는 '숫자' 때문인 것 같았다. 30대 중반이라는 가볍지 않은 내 나이라는 숫자와 내 계좌 위에 적힌 너무도 가벼운 숫자. 이 숫자들이 엉키고 엉켜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제주살이 때는 프리랜서 2년 차 초보에, 30이 갓 넘은 나이라고 치자. 그런데 지금은 프리랜서 5년 차에 30대 중반. 분명 그동안 나는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누구나 알만한 굵직한 커리어도 없고, 그렇다고 두둑이 돈을 모아둔 것도 아니고.. 난 지금까지 혼자 밑 빠진 독에 죽어라 물만 부었나 봐..'
그렇다고 불안함과 초조함에 질 수 없었다. 이전과 차별점을 두어 새로운 클래스 기획했고, 다시 모집하기 시작했다. 또 이전에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었다가 미루던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을 찾기 위해 시야를 넓혔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내 모습이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과 불면에 시달리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프리랜서 1인'이 아닌,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었다. 이 시기를 고비가 아닌, 기회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확확 바뀐 덕분에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작년과 상황이 똑같이 이어져왔다면 나는 안정에 취해 다양한 도전과 활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실제로 작년에 경제생활이 안정되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달콤한 안정이라는 꿀 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왜 이렇게 올해 초에 힘들었는지 더욱 선명히 보였다. 단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 가볍디 가벼운 계좌 위에 금액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허무함'이 나를 괴롭힌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글 쓰는 프리랜서로 5년 남짓한 삶을 살면서 잃어가는 것들만 바라봤다. '지금보다 젊은 나의 세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쏟아부었던 내 진심과 열정, 내가 한 노력과는 늘 반비례하며 얇아지는 내 지갑 사정'과 같은 것들만 본 것이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잃은 것이 있기에 얻은 것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잃은 것에 비해서도 훨씬 값진 것일 수 있다. 내가 얻은 것은 바로, '어떤 상황이든 나한테 유리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동안 나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얻은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과정에서 나는 단단하고 건강한 '생각의 근육'이 생긴 것이다.
사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떠나서 모든 사람의 삶은 예측을 할 수 없다. 삶을 살다 보면 내 기대와 다른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하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 우리가 이겨내야 할 무게감은 다르겠지만 어차피 그 상황을 살아낼 사람은 나다. 그렇기에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나의 행동이 바뀐다. 또 나의 행동에 따라서 그다음 상황은 찾아오게 되어있다.
아직 나도 이 능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레벨은 아니다. 때로는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매몰되어 나에게 불리한 점만 바라보고 더 부정적인 생각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흐른 내 젊음과 진심, 열정 덕분에 점점 내 레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3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아직은 화려하지 않은 커리어, 여전히 계좌에 찍힌 한 없이 가벼운 숫자들, 매달 알 수 없는 수익, 언제 어떻게 끊길지 모를 파이프 라인은 내게 불안함만 주지 않는다.
이것들은 내가 당장 움직여야 할,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유와 힘을 준다.
또 동시에 내가 도전할 수 있게 해 주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만들어준다.
덕분에 저는 이렇게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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