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은 30대가 연애할 때 가장 갖기 어려운 것
얼마 전 친한 오빠 K와 '연애, 결혼'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남자 사람 친구가 몇 명 없기도 하고, 1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할 뿐 서로의 연애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K오빠와는 가끔 깊은 연애 상담을 하기도 한다. 오빠와 나누는 대화는 또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의 질과 깊이가 다르달까. 대화 도중 나는 오빠에게 "와.. 이런 게 연륜인가?" 하면서 감탄할 때가 많다.
K오빠는 현재 40대 초반에 싱글이다. 오빠는 워낙 다정하고 세심한 성격이고, 연애 경험도 적지 않아서인지 고민을 털어놓으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으로 이야기를 잘해준다. 특히 자신의 30대를 돌아보며 지금 내 나이대에 고민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알아맞힌다. 그때마다 오빠는 "나는 30대에 이랬지만, 너는 그러지 마.."라며 40대 솔로가 겪는 고충에 대해 말해주곤 한다.
며칠 전에는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을 오빠에게 털어놓았다.
"오빠. 지금 내 주변에 남은 30대 친구들은 연애의 목적이 확실하더라고. 결혼이면 결혼, 비혼이면 비혼.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어. 결혼이 하고 싶긴 한데, 당장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연애만 하기에는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래서 연애 자체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
오빠는 충분히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답했다.
"맞아. 내가 네 나이 때 딱 그랬어. 막연하게 언젠가 결혼은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연애를 했지. 그러다가 만나는 연인이 현실적으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니까 막상 피하게 되더라고. 그렇게 1년, 1년이 흘러서 지금 내 나이가 되고 나서야 알았지.. 결혼할 거면 그때 했어야 했어.. 지금 내 나이에는 결혼할 사람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워."
그리고 오빠는 덧붙여 내게 말했다.
"너도 만약에 결혼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다가 시간 정말 훅 가~ 나이 조심해!"
사회적 나이에 맞춰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마지막에 오빠가 말한 "나이 조심해"라는 다섯 글자는 귀가 아닌 뒤통수를 통해 들려왔다. 짧디 짧은 이 한 문장을 듣고 한동안 머리가 얼얼했다.
맞다. 30대의 연애가 어려운 이유는 '연애'를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미래를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야하기 때문에 시작도, 과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결혼을 생각하면 '나이'는 더욱이나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다 제 짝은 정해져 있다'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막상 30대 중반이 되어보니 주변에 동성, 이성 친구들 중 결혼을 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다. 이 말은 즉, 나이가 들수록 결혼을 원하는 싱글들의 비율은 적어지고, 이 때문에 나에게 맞는 결혼 상대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30대의 연애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효율성'이다. 결혼을 할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맞지 않는다면 빠르게 결정을 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효율성을 생각하고 연애를 하게 되면 긴 시간을 들여서 서로가 서로를 겪고, 알아가기 어렵다. 짧은 시간에 내가 보고 겪은 그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이 조심해"라는 말과 비슷한 조언을 주변 친구들에게 여러 번 들어왔다.
"너 결혼 생각 있어? 그러면 빨리 결정해. 시간 가면 갈수록 힘들어져."
"아예 비혼이 아니라면 애초에 결혼을 전제로 만나야 시간 낭비 안 해."
내가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연애에 대한 마음이 180도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않나.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나도 신경이 쓰이긴 한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이라는 세계가 더욱 자세히 보이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결혼을 너무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 건지, 아직도 연애를 위한 연애, 사랑을 위한 사랑을 꿈꾸는 내가 너무 철이 없는 건지,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효율적인 연애를 해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표를 던져보곤 한다.
돌아보면 나는 일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효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인 글을 쓰는 일만 해도 '효율'과는 정반대의 개념일 것이다. 매일 9~10시간을 앉아서 글을 쓴다 해도 당장 내게 돌아오는 경제적 가치는 그보다 훨~씬 낮다. 또, 연애를 하든 친구를 사귀든 '효율'을 생각하면서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내가 그 사람에게 들이는 시간, 비용을 떠올리면서 관계를 지속한 적은 없다. 오히려 비효율적이게 행동하고 표현해야 마음이 편했고 오래갔다.
그러고 보면 '진심'이 있는 일, 사람, 감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효율성과는 멀더라도 일단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
나는 일에도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좋아하면 늘 비효율적이었다. 나도 사람이기에 내가 들인 노력과는 상반된 결과를 받을 때면 상처도 받고 후회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럼에도 나는 결국 내 진심을 따라갔다. 내 진심이 가리키는 방향은 효율이 아닌 비효율이었다. 내가 들인 시간, 비용, 노력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슬퍼하기보다 우리가 주고받은 진심, 그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30대에 들어선 이후 누군가를 마음에 품으려고 할 때 마음이 불안했던 것 같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효율이라는 옷을 입고 사랑을 하려 하니 두렵고, 불편했던 것이다. 진심을 다 주기 전에 '효율'을 억지로 떠올리며 그 사람과 그 사랑을 판단했고, 일부러 끝을 냈다. 그게 똑똑하고 효율적인 30대의 연예인줄 알았다. 문제는 이렇게 끝낸 연애는 그다음에도 진심을 다 하지 못할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똑같이 내 사랑을 방해했다.
모든 관계는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나. 분명 내게 편하고 어울리는 옷을 입고 사랑을 한다면 나와 비슷한 비효율의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나타나고 내 옆에 오래 남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만난 나도, 그 사람도 계속해서 흔들리는 사람이기에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비효율적인 나와 너의 진심을 따라가고 믿을 수 있는 우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간절히 꿔본다.
아직 나는 효율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뒤통수를 얼얼하게 때린 "나이 조심해"라는 말보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나."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깊게 새겨지는 걸 보니.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내가 40대가 된 후에 어쩌면 K 오빠보다 더 매운 단어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어른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진심이 향하는 비효율적인 연애를, 그러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심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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