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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Apr 16. 2024

30대에 일하면서 배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 클래스를 운영한 지 어느덧 3년이 됐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라고 해도 내게는 '일'이기에 마냥 쉽지는 않다. 하지만 글쓰기 클래스는 지금까지 해왔던 다른 일에 비하면 나의 내면을 가득 채워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을 함께 쓰고, 대화를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보람과 뿌듯함은 정말 강렬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클래스 수강생분들과 오래 관계를 이어오며 '인간관계'대해 배우는 점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내게 큰 깨달음을 줬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때는 2023년 여름이었다. 수강생이신 Y님은 내가 지내는 곳에서 차로 4~5시간 떨어진 곳에 거주하신다. 그래서 2022년 가을부터 온라인으로 글쓰기 클래스를 시작하셨고, 장장 1년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나와 클래스를 이어가신 분이다.


그날도 우리는 정해진 요일, 시간에 맞춰 모니터 앞에 앉아 얼굴을 보며 글을 썼다. 당시에 나는 오랜 시간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연이어 거절을 당하고 있어서 상심이 컸었다. 그때는 이미 클래스를 1년 가까이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대소사를 공유하던 사이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서로의 일주일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꼭 가졌었다. (당시 유일한 힐링 타임이었다.)


Y님께 나는 프로젝트 진척 상황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드렸고,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잘 되겠죠~!"라고 말했다. 그때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씩씩한 척 연기를 했다. 그러자 Y님은 "잘 될 거예요! 작가님!"이라고 답하지 않으셨다. Y님의 답변은 조금 달랐다.

"아.. 근데.. 저는 작가님처럼 프리랜서는 못할 것 같아요.."


Y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다 혼자해야 하잖아요.. 멀리서나마 작가님이 하는 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니까 너무 어려워 보여요. 회사는 팀이 있고, 팀원들과 일을 나눠서 하고, 서로 일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일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혼자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못할 것 같아요."


뭐랄까. Y님이 이 말씀을 하심과 동시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마음에 철썩하고 달라붙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조차도 몰랐던 내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어느 한순간이라도 '나를 나보다 더 잘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 아닐까.



그때 나는 내가 공들여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잘 성사되지 않아서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지친 이유는 '혼자'라는 이유가 가장 컸던 것이다. 시작과 과정, 끝에서 겪어야 하는 모든 감정과 실질적 책임을 몇 년 동안 오로지 혼자 지고 가고 있다 보니 힘이 빠져버렸던 것이다. 특히나 오랫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거절당하는 이 상황에서 나는 상처와 아픔을 동료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Y님이 해주신 저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날 클래스를 마치고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한결 안정이 됐고, 지금 내 상황을 조금은 더 차분하게 바라볼 힘이 생겼다. 나는 연거푸 Y님께 위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봤다.

'과연 Y님은 어떻게 나에게 이러한 힘을 줄 수 있었을까.'


그렇다. Y님은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이기에 완전한 상대방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그 순간마다 Y님은 진심을 다해 내가 되려고 노력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쌓이고 쌓였기에 어쩌면 그 상황에 빠져있는 나보다도 나를 잘 느낄 수 있던 것이다.


Y님의 위로를 듣고 다시 일어날 힘을 받은 나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위로는 상대를 '아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그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러니까 위로의 시작과 끝은 결국 상대를 듣고, 느끼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상대가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20대 때만 해도 이렇게 상대방에게 노력하면 서로가 서로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30대가 되고 나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점을 인정하고 나서 상대를 알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한층 더 깊은 진심과 노력이 담긴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위로뿐만 아니라 그 관계를 잘 이어가고 싶다면 상대방이 되어보려는 노력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는 너를, 너는 나를 결국 다 알아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서로를 듣고, 알아가려는 노력은 더욱 특별하고 가치 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내가 네가 되기 위해, 네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느꼈을 때 우리의 관계는 소중해진다. 유효함 또한 깊어지고 길어진다.






원래 뭘 하든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 않나.

그렇기에 그것은 기본인 것이고.

인간관계의 디폴트는 나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이다.

고로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은 이것 아닐까.

'다른 사람을 듣고,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

그 관계가 소중하다면, 이어가고 싶다면 '이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





내가 아닌 존재를 듣고, 느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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