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OO고등학교 1학년 9반에서 생긴 일(상)
그날은 만우절이었다. 교사 5년 차, 아이들이 어떤 장난을 칠지 긴장이 되기보다는 기대가 됐다. 어차피 학생들이 하는 장난이 거기서 거기(반 표찰 바꿔달기, 책상 뒤로 돌려 앉기 정도)라는 걸 이미 알고는 있지만, 올해는 좀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를 웃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2교시 국사(과목명이 한국사가 아니라 국사였던 시절) 수업을 위해 1학년 9반으로 향했다. 당시 근무하던 OO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합반은 아니어서 8반까지가 남자반이었고 나머지 9반부터가 여자반이었다. 9반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밝았고 수업 분위기도 참 좋았다.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정색을 했다.
"국사 시간 아니에요~~!!"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책 펴~!"
아이들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선생님! 진짜 국사 시간 아니에요. 국어 시간이에요. 저희 보세요. 다 국어책 펴놓고 있잖아요."
나는 절대 속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왔거든, 허튼소리로 장난치려고 하지 마 정도가 당시 내 각오였을 텐데, 웃음 띤 얼굴로 딱 한 마디만 했다.
"오, 조직적인데~?"
준비는 좀 했네. 인정해 주마 하는 아량을 뽐낸 셈.
아우성치는 아이들 속에서 갑자기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가락으로 게시판을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시간표에도 2교시 국어예요!"
나는 환경미화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게시판으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시간표 2교시 칸에 국어라고 적혀 있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날 2교시에 나는 교무실에서 다음 시간 수업을 준비하는 게 옳았다. 9반 수업은 3교시였는데 내가 착각을 했던 거였다.
그러나, 시간표를 보고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얘네들이 나를 속이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나는 각오를 더욱 단단히 했다. 억울함으로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능글맞게 웃었다.
"이 시간표 몇 반에서 떼온 거야?"
내가 속을 것 같아? 나는 의기양양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싱글벙글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럴수록 애들은 더 소리를 쳐댔다.
"국사 시간 아니라고요. 엉엉."(거의 울부짖음)
내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문밖에 선 국어 선생님을 발견한 다음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문 밖에서 나를 보는 국어 선생님의 모습에 놀라서 그제야 교실 바깥으로 나왔다.
교무실 책상 유리 밑에 끼워놓은 수업 시간표를 보고서야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다른 날이었다면 국사 시간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나왔을 텐데.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하필 만우절이라서. 상대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굳은 믿음 앞에서 무엇도 반증이 되지 못했다. 믿음이 이렇게 무섭다.
멋쩍게 웃으면서 3교시에 다시 9반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지쳐 있었다. 아까 기운을 너무 빼서 장난칠 힘도 없다고 했다. 나는 열심히 수업을 했고 여느 때처럼 수업 분위기도 좋았다.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났다. (20241102)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