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나에게는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 타박 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결혼 프러포즈에 관한 이야기다. 결혼한 지 십 년 넘은 이 마당에 프러포즈가 뭐가 대수랴. 결혼식장 다 잡아놓고 하는 프러포즈는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다분히 형식적인 면이 크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야, 세상 유부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 프러포즈받고 결혼한 여자랑 못 받고 결혼한 여자”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남편은 무슨 소리냐, 나는 분명히 프러포즈를 했다라며 발뺌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자꾸 우려먹는 것이다.
남편이 했다는 프러포즈의 전말은 이러하다.
2014년 가을, 나의 생일날.
남편이 손수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와 꽃다발을 준비했다. 2013년 8월에 만난 그가 어느새 예비신랑이 되어 처음으로 차려주는 생일상이었다. 감동이었다. 식탁 한쪽에는 핑크색 봉투가 놓여 있었는데 그 받기 어렵다는, 10년에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생일 카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카드를 읽었다. 카드의 오른쪽 페이지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내용이 몇 줄에 걸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아주 큰 글씨로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으니.
‘나와 결혼해 주어서 고마워.(하트)’
이런 걸 뭐라고 하나. 생일축하와 프러포즈의 콜라보레이션? (생일로부터 8일 뒤가 결혼식)
이 남자, 천재임이 분명하다. (20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