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방법이 있지요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친구가 고충을 털어놨다. 수능 끝나고 애들이 학교를 너무 안 나와서 힘들다는 것이다. 백 번 이해하고도 남았다. 고3 담임을 해 본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이미 그때도 만연했던 현상이었으니 지금은 오죽할까. 출석부의 촘촘한 모눈을 향해 펜을 들고 교시마다 결석자칸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을 때면 없던 환공포증이라도 생길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이었다.
상대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못되게 구는 게 아닌데도 상대의 행동으로 벌어진 사태의 뒷수습이 고스란히 내 몫일 때, 뒷수습보다 상대방에 대한 미움으로 더 힘들어질 때가 있다. 특히, '안면몰수’는 무수히 겪어도 매번 새롭게 아팠다.
이제 볼 일 끝났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식으로 나올 때면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가 한없이 하찮아진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간 봤던 착하고 성실했던 그 아이는 어디에 갔나. 내가 내어준 진심이 뒤늦게 반송되어 온 것처럼 무안했다.
나오기 싫어서 학교에는 안 나오지만 불이익은 조금도 받기 싫어서 이런저런 구실로 떼온 서류를 받아 들 때나, 아파서 결석한다고 해놓고 며칠째 제출하지 않는 증빙서류를 받기 위해 일부러 독촉까지 하게 될 때는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자괴감이 들었다.
친구의 하소연에 맞장구를 치다가 결국 덧붙인 말은,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어. 걔네들로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기도 해. (수능 끝나고 얼마나 나오기 싫겠냐..)
나는 나의 일을 한다. 그런 마음이 필요한 시기인 듯‘
친구가 내가 빠졌던 구덩이에 갇혀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며 한 말이었지만 실은 나도 못하는 일. 당사자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
멋쩍어져서 바로 자진납세를 했다.
‘실은 나도 못하는 일이지만.
이런 말은 옆사람만 해줄 수 있는 말인 거 알지? ㅋ‘
괜히 뜨끔해서 한 말이었지만 쓰고 보니 정말 맞는 말 같다. 내 문제 앞에서는 도무지 거리 두기가 되지 않지만 남의 일에는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남의 일이라 쉽게 말하는 것도, 위선도 아니다. 상대를 돕고자 하는 진심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의 합작품이다. 당사자는 찾지 못하는 출구나 발 딛고 선 진창이 옆에서는 보일 때도 있으니까.
이쪽에서만 보고 있는 나를 향해, 저쪽에 서 있는 이가 말한다. “이 방향에서 보면 조금 달라 보여!”
나도 이런 동아줄을 타고 수렁에서 몇 번 탈출한 경험이 있다. 줄을 내려준 이는 남편, 친구를 비롯해 여러 책의 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자기 문제지만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놀랄 일도 아니다. 내 눈에는 안 보이는 뒷머리를 잘 깎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친구가, 이웃이, 아니면 책이라도 필요하다. (202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