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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May 25. 2020

내일 조아

오랜 친구의 세상 구경으로부터



내일은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 느낌이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핼리팩스에서는 버스 운전기사와 여유로이 대화와 인사를 나누었지만, 여행 메이트 아저씨가 칫솔질을 하며 졸음을 참고 17시간 달려 도착한 뉴욕에서는 서울처럼 삭막했다고 한다. 어쩌면 서울보다 뉴욕이 더 삭막할지도 모른다. 핼리팩스와 뉴욕 간의 17시간. 같은 북아메리카 내 지역이지만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도 관계도 17시간만큼 멀어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핼리팩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조리사로 일을 하고 있었을 때다. 홍합요리 주문이 육성으로 들어왔고, 주문을 되뇌며 평소처럼 홍합을 볶아 낸 내일. 홍합 접시가 홀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국물 없이라는 옵션을 듣지 못했다. 영어가 서툴렀던 내일은 아, 국물 많이!로 알아듣고 열심히 새로 국물이 자작한 홍합요리를 재빨리 만들어냈다. 불같이 화가 난 매니저가 내일에게 뜨거운 프라이팬을 던졌다. 집에 돌아가 방구석에 앉아 조용히 흐느꼈다고 한다. 이게 뭐라고. 한국에 있었음 너 새끼들 다 죽었어. 라며 소심한 속풀이를 하며 현타를 제대로 맞았다. 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내일의 실수 일화는 그가 잘릴 위협까지 느끼게 했다. 그런 해프닝이 무색하게도 떠날 때가 되자 매니저는 베스트 쿡이라며 애원하며 내일을 붙잡았지만 그는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서보고, 전혀 다른 일을 해보고. 세상에 대한 눈과 마음이 더 넓어졌을 거다. 내가 알던 한국이란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고 그 안의 라이프 스타일도 전부는 아니었다. 캐나다 핼리팩스라는 다른 세계를 보았고 그 장소에서의 경험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떨림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그의 1년이란 시간은 그 짧은 물리적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며 영유할 것이다.


호기심 넘치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했던 내일 소년은 세상을 구경하고 졸업을 했고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하고 이제 돌이 갓 지난 예쁜 딸 조아의 아빠가 되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뜨거운 프라이팬 세례까지 맞아본 내일은 딸 조아를 마음과 몸이 단단하게,  마음이 물렁하게 열리도록 키울 멋진 아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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