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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Aug 09. 2022

차이아저씨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의 손을 덜컥 잡았다.


차이아저씨는 치앙라이 아래 빠이캐년 앞에서 만났다. 여행객들에게 음료수를 판매하고 계셨는데 나도  여행객  한 명이었다.  무더운 날에 100 맛있을지, 콜라가  맛있고 힘이 될지 고민하고 있는 내게 아저씨는 대뜸 자신의 친구들이라며 여러 여행자들과 여러 로케에서 함께한 사진을 보여주셨다. 아저씨는 스님이 되어본 경험도 있었다. 내가 신기해하자, 태국에서는 모든 남성들이 특정 시기가 되면 눈썹까지 삭발을 하고 절에 들어가 수도승 생활을  때가 있다고 했다. 모든 이들이 탁발승이 되어 수행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잠시 동안 스님이 된다는 자체가 너무 신선해서 빠져들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크고 선한 갈색 눈망울을 가진 차이아저씨. 아저씨는 새해를 맞아 친척들을 방문하러 오토바이를 타고 치앙마이에 간다고 했다. 내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아저씨. 선한 기운을 내뿜는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선택을 믿기로 했다. 다음날 그렇게 여러 가지의 모험으로 가득 찬 패키지여행 같은 날을 보낼지도 모른 채로.


시작은 커다란 둥근 무 같은 바위가 솟아있는 루아텅 폭포였다. 쉽게 말하면 계곡인데, 물이 흰색 바위들을 타고 내려가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마치 산에서 우유가 흐르는 것 같았다. 굽이굽이 흐르는 우윳빛 계곡을 발로 타고 올라가며 즐겼다. 내 생애 이런 신기한 자연풍경은 오랜만이다.


아저씨 누님과 삼촌 댁에 새 해 인사를 드리러 갔다. 태국의 새 해는 ‘송크란’이라고 부르는 서로에게 물을 뿌려주며 한 해의 복을 빌어주는 때로 4월이다. 축제 분위기가 사그라들 때쯤이었는데 어쩐지 아저씨의 오토바이가 짐으로 가득 찼더라. 어떻게 이렇게 가져가지 할 정도로 많은 짐들이 오토바이에 달랑달랑 매달려있었다. 다름 아닌, 가족들에게 드릴 새 해 선물이었다. 마늘 한 꾸러미에 쌀 작은 포 하나 향가지와 쌀과자. 다른 주전부리도 들어있는 선물꾸러미를 누님께 전달했고 아저씨 누님 그러니까 나에게는 할머니뻘 되시는 분과 거실에 마주 앉아 선물을 드리고 할머니는 답례로 덕담을 해주시며 손목에 명주실을 매듭지어주셨다. 절에서도 많이 받는 이 명주실 팔찌는 스스로 끊어지기 전까지 끝까지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이 예이다. 나를 보호해주는 팔찌라 굳이 뺄 이유가 없다. 아저씨 덕분에 이렇게 가까이서 태국의 새 해 전통을 경험해본다.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하게 느껴질 때이다. 내게 일어날 수밖에 없던 것들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이럴 때이다.


다음은 아저씨 친구들을 뵈러 갔다. 너 다섯 분정도 모여서 이미 잔치를 벌이고 계셨다. 아저씨 친구들은 내 소개를 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찬 까올리. 마이 뺀 입뿐” (저는 한국인입니다. 일본인이 아니에요.)

동아시아 사람을 보면 한국인 빼고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중국인과 일본인. 아저씨가 알아서 저렇게 알려주셨다.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시골에서 먹는 태국 북부의 음식들. 그중에는 랍이라는 무침 샐러드 정도 되는 음식이 있었는데, 돼지고기와 돼지고기 피까지 버무려진 그런 음식이었다. 어떤 음식이라도 시도해보는 걸 마다하지 않는 성격인데 이건 좀 흠칫했다. 그래도 한 번 맛이나 볼까? 눈을 질끈 감고 입안에 피범벅 돼지고기를 넣었다. 해골물을 달게 마신 원효대사가 된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누님 댁에서 하루를 보내고 가자고 하셨다.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빠이를 떠날 계획이어서 그렇게 내키지 않던 나는 그냥 오늘 저녁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그런데 가는 길 782번이나 계속되는 커브길을 반쯤이나 왔을까 폭우가 쏟아졌다. 승차감이 좋지 않은 일반 오토바이의 뒷좌석에서 3시간. 허리도 아프고 바람을 내리 맞아서인가 20대 중반 새파랗게 젊은 내 무릎도 시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저씨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왕복 6시간을 자동차도 아니고 오토바이로 그리고 이 악천후에 운전을 하시는 아저씨는 쉬고 싶은 마음이 크셨을 텐데 내가 괜히 무리해서 가자고 해서. 그래도 미소를 짓는 아저씨는 허기질 때 먹으라며 바나나 잎으로 싼 떡을 건네셨다. 죄송한 마음이 더 커졌다. 지금 되돌아보면 솔직히 빠이에서 하루 더 묵고 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아마 이 날의 기억으로 더 여유로이 여행의 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


여행의 길에선 유독 사람을  믿고 싶어 진다. 믿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이다. 사람을 믿건 아니건 나의 선택이다.  기준에서 좋은 기운을 내뿜는 사람의 손은 덜컥 잡고 싶어 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삶을 알고 싶다. 함께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공유하는 추억이 생기고 그렇게 나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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