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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우 Aug 14. 2021

아무튼, 혼술: 책에 이끌린 혼술

여의도화목순대국

 오늘은 먹으러 왔다기보다는 느끼러 왔다.


 구본형 선생님의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나오는 순댓국 집이 있다. 책에 상호는 안 나오지만 검색을 통해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곳이다. 자기계발서의 정석 같은 유명한 책의 181 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이 집이 성업을 이루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음식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고객의 요구 사항을 맞추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왜 순대국과 내장탕을 자신의 사업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돼지의 순대와 내장으로 "부드러운 씹을 것과 진한 국물 맛"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 끼'를 만들어내며 이것으로 사업의 승부를 걸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만이 잘할 수 있는 틈새를 찾아 1인 기업가로 경쟁력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예로 이 식당을 소개했다. 미국의 쌍둥이 전문 보모 이야기와 영국의 세금 환급절차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한 청년과 함께 제시된 사례인 것이다. 화목 순대국은 자기만의 경쟁력을 가진, 사업 승부수가 있는 노포이므로 나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본형 선생의 추종자라면 그 어느곳 보다도 쉽게 그분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은 순전히 핑계다. 매우 합리적이고 격조 높은 핑계다.


 나는 구본형 선생님이 표현했던 "이 집의 순대국, 내장탕의 맛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전날 술 한잔을 했거나 모처럼 짭짤하고 진한 음식에 구미가 당기는 경우에는 먼데서라도 찾아오는 곳이다." 이 부분에 마음이 흔들려서 오게 되었다. 한국인의 DNA에는 가끔 이런 진득한 국물을 요구하는 유전인자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라며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집착을 정당화해 본다.


 

   여의도에 있는 화목 순대국은 내가 주로 활동하는 동선을 벗어나 순전히 혼술을 위해 방문하게 된 첫 식당이었다. 그러다 보니 허름한 상가 내에 위치한 식당 앞에서 괜히 쭈뼛거리며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어리숙하게 고개를 들이밀었더니 천정이 낮은 다락 밑의 자리로 안내를 해준다. 쭉 둘러보니 테이블도 몇 개 안 되는 그런 작은 식당이다. 조금은 아늑하고 약간은 친숙한 그런 분위기다. 


 메뉴는 볼 것도 없이 순댓국을 주문했다. 내장탕도 있고 순대 접시, 술국, 편육 등 메뉴가 더 있지만 처음 방문이니 시그니처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고, 또 다른 메뉴에 도전하기 위한 다음을 기약해볼 수 있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주문을 하고 순식간에 순댓국과 참이슬 한 병이 내 테이블에 놓였다. 주문 후 2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국밥은 패스트푸드의 첨단이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보다 훨씬 빠르다. 신속한 주문과 조리, 서빙을 위해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한 것은 맥도날드 보다 한국의 국밥집들이 수십 년은 족히 먼저 시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장품의 연구, 개발에서 생산/판매까지 6개월이면 끝낼 수 있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뉴욕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객을 위한 스피드 경영의 원류가 국밥 정신에서 나온 건 아닐까 추측도 해본다. 무리한 억측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DNA에 국밥을 찾는 유전인자가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면, 경쟁력을 갖기 위해 속도전을 감내하는 유전인자도 어딘가에 반드시 숨어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이 얘기도 술과 안주가 빨리 나와서 기분이 좋다는 말이다. 눈앞에 놓여있는 순댓국은 책에 표현된 찐득한 국물과 일치한다. 진한 빨간색이 매워 보이지만 어린 입맛을 가진 나도 먹을 수 있는 적당한 매운맛이다. 게다가 더욱 감사한 것이 있다. 그동안 최고의 가성비 안주인 순댓국에 열광하지는 못했었는데, 그 이유는 순댓국 안에 들어 있는 부속 고기들,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위들을 잘 먹지 못했기 때문었다.(입맛은 나이와 상관없으며, 입맛도 철이 들기 위해서는 갖고의 노력이 필요한데, 나는 아질 멀었다) 그런데, 이곳의 순댓국은 순대와 곱창뿐이다. 심플하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남김없이 다 먹을 수 있겠네요.   


 이런 게 바로 궁극의 가성비다. 7천 원으로 곱창전골을 누릴 수 있다. 뼈해장국에 치환된 감자탕의 위엄과도 같다. 국내산이니 냉동이니 이런 건 따지고 싶지도 않다. 뭔지 몰라도 상관이 없다. 노포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헐값 수준인 것이다. 여의도에서의 이런 가격,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에 더해 구본형 선생님도 여기 어딘가의 자리에서 그릇 하셨겠지. 소주는 뭘로 드셨으려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번도 그분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지금의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오야마 거리 여기 어디를 이렇게 사뿐사뿐 걸었겠지 라고 생각했던 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다른 시간대 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머물면서 느껴지는 감성이란 것이 존재 한다. 이렇게 순댓국집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책을 들여다보며 혼자서 '구본형 팬미팅'을 하고 있다.  


 진득한 순댓국과 참이슬을 번갈아 가며 먹고 마신다. 착착 호흡이 좋다. 나른한 오후의 반주란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다. 소량의 알코올로도 기분이 살짝 들뜨게 된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깍두기를 바라본다. 그렇다. 국밥집의 깍두기는 이래야 한다. 맑은 느낌의 깍두기다. 라이트한 양념으로 담근 지 이틀 정도 되어 보이는 신선한 모습이다. 진득한 국물의 잔상을 걷어줄 산뜻한 무의 맛인 것이다. 다 먹고 가야겠다. 


 국밥 먹는 속도가 참이슬을 마시는 속도를 앞질렀다. 그 결과로 발생한 술과 안주의 과부족에 대한 불균형은 이런 식당 혼술의 아킬레스건이다. 남은 술을 위한 추가 주문을 하기에는 메뉴가 너무 과하다. 웬만큼 취하지 않고서는 혼자서 추가 주문을 할 수가 없다. 살짝 곁들일 소소한 메뉴가 없는 부분은 좀 아쉽다. 


 식당의 혼술답게 오늘도 30분 만에 끝났다. 짧은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존경하는 분의 성지순례처럼 다녀간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훌훌 일어난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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