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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r 13. 2021

입덧과 숙취의 차이점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 앞에 주저앉아 구역질을 한다. 식탁으로 돌아온 그녀는 밥그릇을 멀리 치우며 “밥 냄새 때문에 죽겠어요.”라고 말한다. 우리 가족은 티브이를 보며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어린 나는 밥그릇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좋은 냄새밖에 안 나는데.” 그 모습에 부모님은 박장대소했다. 


이 장면을 다시 떠올린 건 우리 집 화장실 변기 앞에서였다. 전기밥솥에서 흘러나온 증기가 내 콧속을 스치자마자 나는 구역질을 시작했다. 살면서 그렇게 역한 냄새는 처음이었다. 변기 앞에 주저앉아 몇 번이나 웩웩 토했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냄새는 계속 코끝을 맴돌았다. 그제야 알았다. 밥 냄새가 이런 거였구나.

임신 사실을 알기 전부터 입덧을 시작한 나는 장장 21주까지 매일 변기를 붙잡고 씨름했다. 조금만 입에 안 맞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음식을 먹은 날이면 바로 게웠다. 백화점, 회사, 지하철역, 아파트 상가, 시댁, 친정, 친구 집 등 어디를 가든 화장실 위치부터 파악했다. 신호가 오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변기를 붙잡고 하루도 안 울고 지나치는 날이 없었다. 먹은 걸 다 올리고 나면 절로 눈물이 고였으니까.


매일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나는 변기를 품평하기에 이르렀다. 백화점 화장실 변기는 얼룩 하나 없이 반질반질 빛났다. 다급한 와중에도 토사물이 튀지 않도록 주의하게 됐다. 지하철 화장실에선 입덧 때문인지 아니면 변기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토할 수 있었다. 회사 화장실에서는 옆 칸 사람 눈치가 보였다. 우웩 소리가 크게 날까 전전긍긍했고 다급한 와중에도 누가 없는지 칸칸이 문을 열어 확인하기까지 했다. 역시나 마음이 가장 편한 곳은 우리 집 화장실 변기였다. 따라 들어오려는 남편을 저지하고 나는 왼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내 등을 두드렸다. 속이 울렁거리고 고개를 오래 수그리고 있다 보니 양변기를 세세히 관찰하게 됐고 작은 티끌 하나도 거슬렸다. 난 점점 우리 집 변기의 청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변기 클리너, 청소 솔, 화장실 세제 등을 사들이고 남편에게 청소를 요구했다. 아기를 품고 엄마는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거저 아빠가 되는 남편이 얄밉기까지 한 나날이었다. 


입덧은 술을 잔뜩 퍼마신 다음 날의 숙취 같았다. 누워도 앉아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자리보전하다가 결국엔 비틀비틀 화장실로 가서 토한다. 그런 다음 타는 듯한 목구멍을 부여잡고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지.’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아무리 심한 숙취도 오후 5시가 넘으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건 술을 또 마실 원동력이 된다. 입덧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입덧은 끝이 없다. 아침에 눈 떠서부터 신의 은총으로 눈 감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 무렵 나는 꽤 절망했다. 분만하면서도 입덧 때문에 토했다는 산모 후기를 일부러 찾아 읽으며 마치 내 일인 양 눈물을 쏟았다.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졌다. 매주 산부인과에 가서 체중을 잴 때마다 일이 킬로그램씩 빠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1주일간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고했고 나는 기쁘게 응했다.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그 위엄을 떨치기 전이었기에 몸이라도 가뿐했다면 쏘다니기 바빴을 거였다. 하지만 배 속엔 서른여덟 해를 살면서 여덟 살 때도 해 보지 않은 반찬 투정을 다 하게 만든 생명체가 살았으므로 난 자중해야만 했다. 안방 침대와 화장실 변기를 오가며 지냈다. 그 주 금요일, 모처럼 달게 잠을 잤다. 눈을 떴는데 두통도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도 구역질이 나지 않았고 엄마 반찬으로 밥이 먹고 싶었다.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난 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어 보았지만 아직은 아기가 답을 해 줄 시기는 아니었다. 나는 맨발에 코트 하나만 걸친 채 밖으로 나갔다. 상가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간판을 위아래로 훑어 산부인과가 몇 층에 있는지 찾아냈다. 대기실에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다 호명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소스라치게 놀라 진료실까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의사는 내가 조금 전 적은 차트를 보며 말했다. “처음 오셨네요. 지금 임신 18주 3일이시고 당장 초음파를 보고 싶다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물었다. “혹시 하혈을 했거나 배가 아프신가요?”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네, 알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서 천천히 누우세요.”

차가운 젤이 맨살에 닿을 때면 부르르 몸이 떨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이유로 떨렸다. 의사가 기계를 움직이자 화면에 내 배 속 상태가 상영됐다. 쿵쿵쿵쿵 심장 소리가 우렁찼다.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심장 소리도 이상이 없고 아기가 팔, 다리를 잘 움직이네요. 초음파 사진을 찍었는데 죄다 흔들렸어요.” 


심령사진 같은 초음파 사진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의사와 마주 앉았을 땐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말도 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입덧 증상이 사라져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왔거든요.” “이제 입덧이 끝날 시기도 됐죠. 이만해도 다른 산모들보다 오래 한 편이니까요. 고생하셨네요.” 그가 이렇게 말해 준 덕분에 나도 이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 그럼 입덧을 심하게 하면 아기가 건강하다는 속설이 맞을까요?” 의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내 이 말을 덧붙였다. “임신 호르몬 수치가 높은 산모일 경우 입덧이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로 봐서 입덧이 심한 산모의 아기가 건강히 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의사가 사려 깊게 건넨 한마디가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모처럼 나왔으니 점심이라도 먹고 들어가려고 1층 식당가로 향했다. 무슨 음식을 먹을지 고민도 하기 전에 나는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려야 했다. 배 속에 들은 아기가 자신은 건강하다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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