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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Dec 01. 2022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퇴사하고, 지금 탁구 치는 중입니다_2

탁구의 손맛_탁!


공을 타이밍에 맞게 잘 치는 순간 탁! 하는 소리는 소화제에 맞먹는 시원함을 선사해줍니다. 낚시로 따지면 손 맛,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들어간 순간, 테트리스에서 가장 긴 블록이 들어가는 쾌감, 십자말풀이의 마지막을 완성한 느낌!? 에 유사한 탁구만의 손맛이 있습니다. 마무리하고 가야지 마음먹고도 ‘이 공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이용 시간이 끝나서 마지못해 탁구 라켓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니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탁구 레슨을 받게 되면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스매싱이었습니다. 떠오른 공이 무색할 정도로 예리하게 꽂히는 공, 상대방이 받기에는 무리수, 탁구를 치는 사람들은 “나이스!!”를 외치는 그 순간. 물론 치는 방법은 몰랐지만 늘 그려온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저에게도 금방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든, 할 수 있는 것이든 그전에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단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균형을 잡아야 하고, 공을 잘 봐야 하고, 네트를 넘겨 반대쪽 테이블에 안정적으로 공을 안착시키려면 기본기를 다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본기를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었습니다.


라켓 각 세우세요.

손목 꺾지 마세요.

자세! 손목! 빠르게! 멀어요. 돌아와야죠!

코치님의 요구사항과 나의 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삐거덕거리며 쫓아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입력과 출력이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파-쇼트로 랠리를 이어갈 수 있어야 다음 기술을 배우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기술을 배우면 칠 수는 있지만,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몸 어딘가가 고장이 나거나, 제대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그냥 취미가 아니라 저를 선수로 생각하시는 건가 너무하다.. 는 생각이 들다가도, 배우겠다 다짐하고 진심을 다하지 않는 스스로를 자각하며 반성합니다.


하고 싶은 것_할 수 있는 것_해야 하는 것


생각해보면 탁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이라는 것이 그렇더라고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없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고, 해야 하지만 하기 싫고, 해야 하지만 할 줄 모르고(제 생각엔 가장 슬픈 경우)… 기본기 없는 스매싱이 상대방의 테이블에 제대로 꽂히는 건 요행을 바라야 합니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있다.



탁구를 치다 보면 생각은 매일 지나간 일들의 언저리에 있습니다. 안정적인 곳에서 나와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가고 있는 한 선배연구자분은 모든 일에는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고, 원치 않아도 감수해야 하는 일은 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차 하다 탁구공에 맞은 기분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장 먼저 공들여야 하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서투른 시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초심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리하지 않고, 우선 해야 하는 일들을 잘 판단하고 그것을 되도록 효율적으로 하는 것, 그래야 프리 워커의 삶도, 탁구인으로서의 삶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테이블 위로 날아오는 공을 스매싱으로만 대응하면 결국 맞은편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일을 마주하면서 때로는 정공법으로, 무례함에는 커트로, 긴 호흡이 필요할 때 드라이브로 순간들을 잘 넘기라고 탁구를 배우나 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스매싱을 날릴 수 있도록 탁구도, 나의 일도 기본기에 충실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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