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지금 탁구 치는 중입니다_4
내 생애 가장 꽉 채운 6분_레슨
제가 다니는 곳의 탁구레슨은 정확히 6분입니다. 대부분의 수업은 보통 50분이었으니, 6분이라는 시간은 배움이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순간, 그 시간만으로 내가 탁구를 배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이 호명되고 레슨이 시작된 후 알았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6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코치님이 치는 공을 받으며 좌우로 움직이다 보면 숨이 차오르고, 탁구 라켓이 무거운 것도 아닌데 팔이 아파옵니다. 6분 동안 복습을 하고, 새로운 기술를 배우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살면서 그렇게 꽉 채운 6분을 보낸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 6분이 쌓여 수업 진도는 벌써 스매싱과 커트까지 왔습니다.
하루 중 앉아서 기사를 서치 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탁구 레슨 몇 분은 같은 시간인데도 질이 너무 다르게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노래는 3-4분에도 울림을 줄 수 있고, 프레젠테이션에 주어지는 시간도 5분 내외에 불과할 때도 많습니다. 방대한 논문의 목적과 이론도, 어쩌면 제가 들었던 수많은 수업의 핵심도 결국 한 문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6분이라는 시간만으로 수업의 질을 예측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내 것으로 만드는 3시간_연습
레슨은 6분이지만, 배움은 6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레슨 받은 내용을 머리로 이해했다 해도(그것도 어렵지만) 단 시간 내에 몸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결국 공이 라켓에 맞는 위치, 의도한 곳에 떨어뜨리려는 노력, 기본자세를 상기하며 연습을 해야 합니다. 3시간은 늘 훌쩍 지나갑니다. 그래도 늘 연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음 수업 시작 전에 미리와서 배운 것을 기계로 연습합니다. 같이 치는 회원분들을 관찰하고, 모르면 물어봐 가면서 익혀갑니다. (공부를 이렇게 할걸 그랬습니다..) 그렇게 탁구 스텝과 기술이 몸에 스며듭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정보, 기술이라 하더라도 내가 ‘익히지’ 못하면 내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익다'라는 말은 능숙하게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찾아보면 경험의 ‘빈도‘를 의미하는 ‘자주’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운 것을 잊기 전에 여러 번, 꾸준히 해야지만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뜻인가 봅니다. 수업을 ‘들었다’고 모든 걸 ‘이해’하거나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탁구도 인생도_성실함과 실력의 상관관계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든 요즘, 언제까지 탁구를 칠까 생각하곤 합니다. 주 2회 오전 시간을 채워 꼬박꼬박 나가는 것은 다른 일을 조절해야만 가능하니, 약간의 지치는 마음도 생깁니다. ‘배웠다’가 아니라 ‘탁구를 익혔다.‘가 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됩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수많은 요인 간의 관계를 양적으로 분석할 때가 있습니다. 성실함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는 못봤지만, 아마도 (몇 가지 요인들을 통제하고) 유효한(***) 정적 상관관계가 나오리라 예상해 봅니다. 물론 성실함이 눈에 띄는 실력 차이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매일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실함이 가져온 결과일 거라 생각합니다. 습관은 매일 조금씩 스미듯 몸에 익혀지고, 꾸준히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요.
열정이 폭발적이며 뜨겁다는 건 일종의 편견일 수 있다. 내가 아는 열정은 오히려 들뜨지 않고 차분한 것이다. 열정은 컨디션이 가장 좋지 않을 때도, 도무지 그 일을 할 마음이 나지 않을 때 역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냉정한 에너지에 가깝다.
안녕, 나의 빨간 머리 앤_백영옥 에세이. 153면
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운 열정이라면 지속해서 나아가는 힘인 성실함은 냉정한 에너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함께 있다면 좋겠지만, 스스로의 선택을 유지하는 것은 열정 이후의 끈기, 지속할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탁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모든 것을 잠시 멈춘 상태에서 시작한 탁구는 저의 인생을 돌아보게 합니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시간과 노력을 들어야 합니다. 탁구 선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매싱을 날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하고 노력을 했을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은 보이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이어진 어느 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