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탄생기>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 분홍색 치마를 입고 쇠와 가죽(인지, 레자인지) 으로 구성된
처음보는 의자에 올라탔다.
올라탔다는 말이 내겐 정확한데 의자는 내 다리길이보다 높은 곳에 엉덩이를 두는 곳이 있었고
양쪽 다리를 두는 곳은 따로, 따로, 더욱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캄캄한 곳, 처음보는 두 여성(의사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차갑고 무서운 의자에 앉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고 수치스러웠다.
그래, 내가 6학년 동생이 3학년일 때, 내 동생 포경수술에 내가 따라갔었는데 내 동생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안한다고 짜증내며 울던 동생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자궁경부암 검사와 임신확인을 동시에 하느라 한참이 걸렸다.
무시무시한 의자에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톱으로 왼쪽 손등 살을 계속 꼬집었다.
수치스러움과 아픔이 이렇게 하면 좀 사라질까 싶어서.
경부암 검사가 끝나고, 드디어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
차갑고 굵은 검사기가 내 항문 근처를 꾹꾹 눌렀다.
" 아기집이 보이네요. 임신맞아요. 한 4주정도 된 것 같아요 "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뱃속에 아니 정확히는 엉덩이 근처 어딘가에 나 말고 다른 생명이 있다고?
기쁨보다 불안이었고, 설렘보다 긴장이었다.
분명 두근거림이 있긴 했지만 '환희'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시크한 여자 선생님께 다시 한번 임신이 맞는지 확인한 후,
찍어주신 사진을 우리집(아빠, 엄마, 동생) 카톡방과 남편과의 카톡방에 올렸다.
'나 아기 가졌데'
남편과 가족들 모두 축하를 전했고, 몸 조심하라고 당부에 당부에 당부를 해주었다.
며칠 뒤, 어스름 새벽.
잠에서 깨 벌떡 일어나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오빠! 오빠 일어나봐. 무서워! 나 무서워!"
"왜~ 왜 무슨일이야"
"사자가 무서워. 엄청 큰 숫사자랑 싸웠어."
"엉~ 괜찮아~ 사자 왜~"
"진짜야 무서워"
"얼른자~ 자면 괜찮아"
무서워하는 나보다 잠이 중요한 남편을 등지고 구글 검색창에 '사자'를 쳐넣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커다란 사자, 내 꿈에 나왔던 그 숫사자 이미지를 찾아보며 '아 무서워.. 너무 무서워... 무서워'
이유도, 의미도 모를 일을 하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그 날 아침 출근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사자 꿈 꿨어. 엄청 큰 숫사자가 우리 아파트 테니스 장에 있는데 엄마랑 내가 사자랑 싸우다가 엄마가 나 먼저 들어가라고 해서 집에 들어왔는데, 아기용품 택배가 엄청 많이 와있어서 가지고 들어가는 꿈"
엄마가 막 웃으며,
나는 가지꿈을 꿨다고. 안권사랑 가지밭에 갔는데 아니 세상에, 그렇게 크고 예쁜 가지는 처음봐서 따오려다가 말았다고. 너 아무래도 아들 낳을거라는 말을 했다.
난생 처음 동물이 이렇게 생생하게 나오는 꿈을 꾼 것도 신기하고, 그것이 임신 중에 꾸게 된 '태몽'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사자와 가지 꿈이면 '아들'이라고 굳게 믿는 독실한 기독교신자 엄마도 신기했다.
진짜, 나는, 남자아이를 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