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밥부터 파전까지
트레이더조가 일반 미국 마트와 다른 점은 제품의 80% 이상을 자체 PB 상품으로 채운다는 점입니다.
유통마진이 적다 보니 다른 곳보다 가격 면에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자체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상품을 개발하다 보니 전 세계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상품을 내놓기도 하는데
운 좋게도 한식 역시 트레이더조의 주요 타깃 중 하나입니다.
몇 년 전 트레이더조에서 만든 김밥이 붐이 일어 재고가 부족해 오픈런을 한다는 소식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이곳 김밥보다는 다른 한식 제품들이 월등히 맛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메뉴들도 개발하는 점도 그렇고, 맛도 좋아 한식 개발팀에 로컬 한국인이 여럿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한식 상품 패키지 겉면에 한글로 쓰인 '트레이더조' 인감 문양이 찍힌 것도 인상적입니다.
한국 음식은 한국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전략적인 마케팅 수단인데 이방인 입장에서는 완전 취향 저격 당한 거죠.
그동안 제가 내돈내산 하며 시행착오를 겪어 본 트레이더조의 한식 제품들을 가감 없이 소개합니다.
① 잡채밥(3.99달러)
얼마 전 새로 나온 잡채밥입니다.
트레이더조에서 그동안 비건 잡채를 판매했는데 잡채밥이 이번에 새로 나왔어요.
잡채는 외국인들에게 허들이 낮은 음식입니다. 맵지도 않은 데다, 고기를 넣지 않으면 채식주의자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죠. 글래스누들로 한 한국식 파스타라고 하면 외국인도 쉽게 이해하더라고요.
그런데 잡채밥이라뇨. 면과 밥을 한 번에 섞어 먹는 음식은 한국에서도 사실 잡채밥이 거의 유일하잖아요.
트레이더조라면 다른 음식 개발할 것도 많을 텐데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이 음식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잡채밥을 개발했을까요.
기존에 잡채를 생산하고 있다 보니 잡채밥을 새로운 메뉴로 개발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현지인들은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만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성과가 궁금하네요.
트레이더조는 PB상품의 판매가 부진하면 곧 단종시키기도 하거든요.
트레이조가 개발한 잡채밥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까요.
아주 심플합니다. 용기를 뜯자마자 개별 포장도 없이 바로 냉동된 내용물이 보이네요.
내용물에 비해 너무 많은 포장재가 들어 있는 한국 제품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2인분 분량이에요.
요리 방법, 간단합니다.
달궈진 팬에 오일을 두르고 해동하지 않은 내용물을 부어줍니다.
그리고 완전히 녹아 뜨거워질 때까지 달달 볶아요.
얼려져 있을 때의 비주얼은 별로였는데, 기름을 먹이면 금방 반들반들해지네요.
채식 잡채를 판매 중이라 그런지 잡채밥에도 고기는 들어있지 않아요.
이번에도 잡채밥을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으로 내놓은 것 같습니다.
맛은 어떨까요.
자극적이지 않은 잡채의 맛과 야채볶음밥 맛이 나서 저는 개인적으로 '호'였습니다.
2인분에 3.99달러이면 가격도 너무 좋지 않나요?
밥 하기 귀찮을 때 꺼내먹을 용으로 항상 쟁여두고 있습니다. 부디 단종되지 않길.
② 비프 불고기(11.99달러)
트레이더조의 스테디셀러인 비프 불고기입니다.
'불고기'라는 단어는 한국인들에게 직관적으로 '소'라고 인식돼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인에선 재료 정보가 중요하다 보니 '비프'를 굳이 한 번 더 언급하네요.
패키지에 밥이 그러져 있지만, 실제 밥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냉동된 불고기를 해동 없이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리면 됩니다.
이 제품은 전자레인지 조리도 가능합니다만 저는 팬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불고기 소스도 고기에 버무려져 함께 얼려져 있다 보니 해동되는 과정에서 불고기 국물이 살짝 생기는데요.
한국 고깃집 가면 불고기 옆에 계란물 같이 풀어주는 곳 있잖아요.
그 방식에서 착안해 저는 이 국물에 계란을 몇 개 풀어 고기와 함께 먹습니다. 더 설명 안 해도 맛도리인 거 아시죠.
트레이더조 제품은 고기만 얼려져 있다 보니, 채소가 필요합니다.
매끼 조금이라도 채소를 안 먹으면 죄책감이 들어서요. 저는 가끔 당근도 썰어서 함께 넣습니다.
아보카도와 로메인 샐러드도 함께 곁들여 먹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됩니다.
불고기 양념은 조금 달달한 점을 제외하면 완벽합니다. 한국인 모두가 좋아할 맛입니다.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은 편인데요. 볶음밥, 타코, 샐러드 토핑으로 활용하는 레시피도 종종 올라옵니다.
③파전(3.99달러)
잡채밥만큼 놀라웠던 메뉴는 파전이었어요.
2023년 말에 출시돼 1년 이상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들어간 건 채소뿐이지만 이 제품은 비건용은 아니에요. 계란이 들어갔거든요.
역시 패키지를 열자마자 냉동된 제품이 바로 보입니다.
보관이 편하도록 지퍼백이 달려있는 게 인상적이네요.
파전은 총 4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3.99달러이니 파전 한 장에 1달러도 안 하는 거죠.
역시 해동 없이 바로 요리 가능합니다.
먹을 만한데, 꼭 사 먹어보라고 추천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바삭한 채소 팬케익을 잘 구현했지만 재료가 풍부하다는 느낌은 적었거든요.
파전은 워낙 토속적인 음식이라 트레이더조가 우리식으로 구현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파도 지금보다 더 많이 들어가야 하고, 오징어나 새우도 듬뿍 들어가야 하죠.
이미 파전 모양으로 얼려진 거라 추가로 재료를 넣기도 애매해서 커스터마이즈도 쉽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