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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Genes)라는 정치

시드니 스위니와 에이미 셰럴드로 본 미국의 인종 마케팅

by Tatte

휴대폰 진동이 연이어 '징징' 울렸다. 미국 현지 소식을 빠르게 듣기 위해 다운 받아 놓은 미국 뉴스 앱들이 경쟁적으로 '속보' 알림을 띄운 것이다.


저널리즘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그 단어의 무게를 알기에 breaking news, 속보라는 글자만 보면 대형 사건의 전조인 것 같아 심장부터 뛴다.


불안한 마음에 알림을 재빨리 확인했다. '이게 속보야?' 싶은 내용이었다. 미국 청바지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의 광고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칭찬하는 SNS를 올렸다는 내용이다.


아메리칸 이글의 광고가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커지던 시점이다. 'Sydney Sweeney has great jeans(시드니 스위니는 멋진 청바지를 입었다)'라는 광고 문구가 문제가 됐다.


jean와 발음이 비슷한 genes으로 언어 유희를 활용해 우생학을 암시하고 특정한 미의 기준을 강요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주요 언론에서도 이를 무겁게 이를 다뤘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까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드니 스위니 지지 발언을 하면서 화력을 키웠다.


"Sydney Sweeney, a registered Republican, has the HOTTEST ad out there. Go get 'em Sydney!"-트럼프 대통령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으니 광고 효과면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캠페인이 된 셈이다. 심지어 아메리칸 이글 광고가 나온 이후 비슷한 취지의 광고도 이어지고 있다.


며칠 뒤 던킨도너츠의 새로운 시즌 음료인 '골든 아워 리프레셔' 광고는 "This tan? Genetics" 이라고 언급한다. 대놓고 유전을 언급해 아메리칸이글보다 더 노골적으로 인종 차별 논란에 편승하려 했다. 백인들 기준에서 선탠은 부유함, 섹시한 매력의 상징이다. 광고 속 모델이 원래 피부색이 태닝한 것처럼 황금빛(golden)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백인들의 유전적 우월감을 강조하는 메시지라는 지적이다.


한쪽에서 백인 우월주의가 논란이라면, 미국의 다른 한 편에서는 흑인이 주인공인 미술작품에 대한 정치색이 논란이다.


최근 뉴욕을 들썩이게 한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문제작'을 직접 보고 왔다.


흑인 작가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 특별전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돼 8월 10일 전시를 마친다.


보그 표지 모델처럼 다채로운 의상을 차려입은 흑인들의 초상화 연작이 이번 전시의 테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 얼마나 화려한 지 셰럴드의 초상화 작품으로 가득 찬 휘트니 미술관 5층은 패션쇼장처럼 보였다.


셰럴드는 '평범한 사람'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 속 대상의 피부색을 흑백사진처럼 회색으로 표현한 것도 이런 주제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흑인을 전형적인 흑인의 이미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자는 의도다.


평범한 사람을 그리겠다는 그의 그림은 되려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백인 작가, 백인 사회를 중심으로 이어진 미국의 전통 미술사에서 흑인을 앞세운 것은 정치, 사회 담론과 분리되기 어렵다. 때문에 흑인을 주제로 그리는 것 자체가 주류 미술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으로 읽히기도 한다.


셰럴드는 여기에 더해 유명 정치인의 자화상도 함께 전시했다. 결국 예술 그 자체만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면서 제작 의도와 특별전 선정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특히 그가 그린 흑인 첫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가 전시된 점은 셰럴드 뿐 아니라 휘트니 미술관이 특정 정치적 어젠다를 지지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여러 논란이 일자 작가 역시 "흑인의 몸 자체가 정치적이다.(The Black body is political.)"라고 언급하며 흑인을 초상화의 주제로 그리는 그 자체가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확대 해석은 경계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평범한 사람들을 재조명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잘 포장된 설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감각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림에는 개인적인 서사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그들의 몸 위에 얹어진 화려한 옷의 색채만이 그들이 이 그림의 주인공임을 알려줄 뿐이다. 인물들의 흐릿한 인상이 반복되다 보니 초상화가 아닌 정물화를 보는 것 같다는 불만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셰럴드가 그린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에서 기억나는 것은 미셸이 보여준 강인한 모습이 아닌 화려한 드레스 뿐이라고 비판했다.


The most memorable aspect of her First Lady portrait is the gown, a cascade of white silk ornamented in yellow, red, pink and black geometries. As for the greyscale face, it doesn’t particularly resemble Michelle Obama’s, and certainly doesn’t evoke her mixture of wit, reserve and incandescence. - 파이낸셜타임즈 <The problem with Amy Sherald’s portraits? They look bored stiff>에서 발췌


또다른 문제작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자유의 여신으로 재해석한 'Trans Forming Liberty'다. 2024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당초 셰럴드의 초상화 연작은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 갤러리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셰럴드는 박물관이 자유의 여신상 그림을 전시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그 즉시 전시회를 전면 취소했다. 스미소니언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시회를 취소하면서 그는 "자유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유는 변화하며,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Liberty isn’t fixed. She transforms, and so must we. This portrait is a confrontation with that truth.”- The Newyorker 100 <Amy Sherald’s “Trans Forming Liberty”>에서 발췌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두 genes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경계가 더 분명해지는 분위기다. 한동안 마케팅(혹은 정치 선전)에서 금기시 된 인종차별에 대한 허들이 낮아지면서 이런 논란들은 최근 미국 사회의 한 단면으로 굳어지고 있다.


자유무역주의 대신 폐쇄적 민족주의가 생존의 답이라고 본 선진국들의 외침이 국가 내부로는 인종 간 문제로 확장하는 흐름이 아닐까. 다민족, 다인종 국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한국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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