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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온 Apr 05. 2020

13/52
어쩌다 퇴사

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결국 퇴사가 결정이 났다. 떠나기 위해 많은 고민과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지르고 나니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나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이렇게도 쉬운 일이었을까? 몇 년 해보지도 않은 월급쟁이 인생에 벌써 퇴사가 두 번이라니,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쉬이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늘 미래를 보며 사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불행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불안하다고 했나. 늘 불안하고 신경질적이며 예민했다. 위장약과 타이레놀을 달고 살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잠식해서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상황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이 회사를 다니는 5개월 동안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시작은 무례하게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나는 그래도 내 직업과 작업물에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그 작업물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한낱 도구로서 취급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잘 굴러가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는 그 가증스러운 작태라니!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그들보다 전문가임에도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왜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일을 해아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미래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쉽사리 때려치우지 못했고, 스스로 좀 먹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어느 날 불현듯이 깨달았던 것은,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우울한 날을 이어나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고, (우리는 100세 시대라고도 부르는데, 1/3도 살지 못한 나는 아직 갈길이 먼 어린아이일 뿐!)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자꾸만 나의 자존감과 가치를 깎아내리는 곳에 단 1초도 더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그깟 미래 좀 불안하면 어떤가. 심해로 가라앉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가고 싶었고, 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다. 





누구는 내게 꼰대처럼 쉽게 도망치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말하겠지. 글쎄. 나는 도망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더 나은 환경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 본능을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다. 짐승도 위험한 환경에선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똑같이 미래를 점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내 삶을 영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꼴랑 회사 그거 다니고 뭘 운운할 자격이나 있겠냐만은, 나는 나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을 이 글 읽는 사람은 알아주었으면 했다. 짧지만 많은 것을 했던 5개월이라는 시간이 끝났다. 



#Now_Playing


선우정아 - 도망가자 (Run with Me)


https://youtu.be/GOS6C2jXTa8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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