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은 딸기였다고 했다. 불룩하게 나온 뱃속에 나를 가진채 딸기 한 소쿠리씩 옆구리에 끼고 야무지게 먹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괜히 코가 시큰해졌다. 그래서 올해 내 생일 케이크도 딸기가 잔뜩 올라간 커피명가의 딸기 케이크였다. (나는 딸기명가라고 부른다. 딸기 케이크가 더 유명해서) 생일이 뭐길래 이렇게 축하를 받는 걸까? 열 달 무사히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것일까? 이런 세상에 무사히 빛을 본 것만으로도 축하받는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돌잔치 때는 사진으로 남아있던 추억을 슬쩍 엿봤었다. 그때야 뭐 만 1살 밖에 되지 않은 영유아니 기억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고. 부모님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마음으로 여러 돌잡이 물건들을 내 앞에 올려놓았는데, 내가 고사리 손으로 잡았던 것은 스케치북과 색색깔의 색연필이었다. 지금도 엄마가 후회하는 일들 중 하나가 돌잡이 물건으로 색연필을 올려놓은 것인데, 나는 우연의 일치인지 결국 색을 쓰는 직업을 택하긴 했다. 비슷하긴 하지.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생일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부모님은 바빴고,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인싸 기질을 가진 아이도 아니었다. 심지어 집에서는 음력 생일을 챙기는 바람에 미역국 한 번 먹고 지나가고, 케이크 위에 초 한 번 불었던 게 전부였다. 생일선물 같은 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나 받았던 기억이 노트 한 귀퉁이 낙서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꼭 생일만 되면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나름의 징크스일 수도 있겠는데, 큰 일은 아니지만 사소하게 이것저것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있지 않으니, 생일이라는 것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나이를 먹었으니 생일도 무던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학생 때는 유독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벚꽃이 흐드러진 때에 나는 필사적으로 중간고사 공부를 하거나 중간고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던 사실을.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울적한 생일을 보내야 했었던 기억들이 겹치고 쌓이니까 생일 자체는 내게 트라우마처럼 깊게 남아있다. 하긴 뭐 타인의 눈으로 보면 365일 중 늘 있는 흔한 날 중 하나일 텐데 생일이라고 호들갑 떨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하고.
올해 생일은 백수 신분으로서 하루를 조용하게 보냈다. 아무런 기력도 없고, 누군가 함께 할만한 정신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내버려 두었다. 뭘 했는지도 모를 하루였지만, 내 생일을 기억해주고 연락을 준 많은 소중한 분들 덕분에 조금은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의 상냥한 말 한마디에 좋은 추억 하나 가지고 갈 수 있었다.
아주 긴 꿈을 꾸었다 깨니 비로소 봄인가 하노라
허블 망원경 30주년 이벤트. 자신의 생일을 입력하면 그날 촬영한 우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nasa.gov/content/goddard/what-did-hubble-see-on-your-birthday
이건 나의 생일날 찍혔다던 우주. 너무 예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