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나 생각 하나 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오랫동안 제일 미운 사람이 나였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성인 adhd로 진단받고 약 먹으며 조절 중이지만, ad인 줄 몰랐을 때에도 제 행동은 "일머리 없다" "허술하다" 등의 말로 여러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 저의 결점을 스스로는 구멍이라 불렀죠. 제 존재가 구멍 속으로 우수수 부서지는 기분이었달까요.
툭 하면 물건을 잃어버리기. 행동이 굼떠서 다른 친구들이 알림장을 다 쓰고 집에 갈 때 혼자 텅빈 교실에 남아 남은 알림장 내용을 적기. 낮은 집중력 때문에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던 뇌. 덕분에 자잘한 실수가 많아 곧잘 튕겨나가곤 했던 회사생활. 뭔가를 찾으러 갔을 때 ‘내가 뭘 찾으러 왔더라’ 하면서 텅비는 머릿속. 남들은 머릿속에 자신만의 지도를 갖고 사는 듯한데 저는 오직 텅빈 종이만 움켜쥘 뿐이었지요.
제가 뭔가를 실수하거나 잊어버린 걸 알아챈 사람들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말은 않지만 ‘한심하다’는 말이 드러나는 눈. 대화에서 조용히 배제되는 점심시간. 불행하다 하기에는 너무 소소한 시간들이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 저는 제 안에서 그 믿음을 점점 단단하게 굳혀갔습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이 대사가 꼿혔거든요. “나를 좋아하는 건 쉽지 않아.” 자신이 자폐인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하는 일이 없을 꺼라는 확신에 찬 영우의 말이 아프게 들렸어요. 영우를 연기하는 박은빈 배우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설득력이 느껴지진 않았지만요. 영우와 함께 일하는 회사동료 이준호 씨가 잠입 업무의 일환으로 영우가 입은 웨딩 드레스를 보자 반한 장면을 본 이후이므로 더더욱 현실성 없게 들렸지만, 왠지 그 말만은 마치 제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거 같았어요.
자폐인인 영우에게 찾아온 건 사랑 뿐만이 아닙니다. 영우의 밥을 챙겨주고 로스쿨 동기들에게 따돌림 당할 때마다 챙겨준 ‘봄날의 햇살’ 수연은 어떻고요. 물론 영우의 천재성에 패배감이나 시샘도 느끼지만, 영우가 당하는 부당함이나 차별에 대해 정확한 비판을 해줄 줄 아는 것도 수연의 몫이더라고요. 자기 자신보다 더 자신의 입장을 잘 대변해주는 친구라니. 여기에 처음에는 자폐인 영우의 입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영우의 천재성을 확인하고는 있는 그대로 영우를 대하는 정명석 변호사까지 있어요. 사랑, 친구, 상사. 자폐인에 대해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 하는 댓글을 볼 수밖에 없는 영우이지만, 이럴 때는 영우가 세상을 다 가진 듯하고 부러워요. 박은빈 배우로 재현된 자폐인은 귀엽고 무해한, 안심을 주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현실의 자폐인들은 어떨까요. 아마 그리 귀엽지는 않을 거예요. 지능도 높지 않을 거고요. 드라마를 본 자폐인 어머니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봤어요. 천재인 영우와 달리 25살짜리 우리 애는 7살 내지 8살 지능인 채로 지금 거실에서 뛰어다닌다고요. 그런 사람에게 사랑을, 우정을 느낄 수 있을지. 저는 사실 자신이 없어요. ad 증상이 드러났을 때 저를 보는 누군가가 과연 ‘이 친구는 장애가 있어서 그래’ 라고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거나 도움을 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폐를, ad를 타인이 받아들이는 일은 어떤 건지 가늠하기 어렵네요.
다만 드라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다름이, 자폐인의 다름이 장애이자 다름이었으면 좋겠다고요. 그 다름을 드러내는 게 활달한 성격과 내성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일 만큼이나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요. 무엇보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으면 해요. 어쩌면 드라마에서 영우가 받는 관심과 사랑은 당연한 것들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영우와 영우의 주변 환경이 마냥 핑크빛 판타지로만 읽히진 않아요. 가닿았으면 하는, 당연한 현실을 좀더 앞당겨 상상한 거라고. 그렇게 보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