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게으른 천성 탓에 그간 미뤄둔 봄맞이 방청소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첫 번째 타깃은 서랍. 이제껏 겉에 붙은 먼지나 털어낼 줄 알았지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몇 년째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낸 게 문득 생각난 것이다. 역시나 열어보니 서랍 안은 이제 막 발굴이 시작된 왕릉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지난 10년의 역사들을 하나 둘 발굴했다. 고등학교 때 첫사랑에게 받은 편지, 군 시절 일기, 대학시절 인턴기자 수료증, 취준생 시절 공부했던 한국사능력시험 프린트물, 토익 문법파트 예상문제집 등등. 간직할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을 골라내고 있는데 파일에서 A4크기의 접힌 갱지 한 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펴보니 뭔가가 샤프로 적혀 있었다. 10년 주기로 정리된 인생 목표였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살-하드코어 밴드 몽키스패너를 결성해 데모테이프를 미국의 레이블에 보낸다. 그 이후 로드러너 관계자의 눈에 들어 곧바로 전미투어를 다닌다. 우리의 리프는 판테라 같을 것이며 정신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과 같을 것이다.
30살-락 앰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된다. 의미 없이 살지 않을 바에는 커트코베인처럼 장렬하게 죽는다.
이 기막힌 인생목표는 무려 100살까지 대저택에서 행복하게 살다 간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의미 없이 살 바에는 커트코베인처럼 죽겠다면서 기어이 100살까지 적은 건 또 뭘까. 내가 이런 걸 썼을 리 없다며 잠시 부정도 해봤으나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필체는 그 바람을 용납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말, 졸업식 때 나눠줄 학급문고에 올릴 테니 자신이 뭐가 되고 싶은지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 때 제출한 글이었다. 결과는 교무실 호출. 그때 담임 선생님은 교직생활하면서 이런 건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너는 공교육에 맞는 유형의 인간은 아닌 것 같다” “형편이 된다면 유학을 생각해보는 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었다(결국 학급문고에는 실리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게 다시 만난 20년 전 장래희망. 기타로 도레미파솔라시도도 제대로 못 치는 놈이 전미투어? 게다가 정신은 뭐? 티벳의 독립을 외치고, 무대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그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30대 아저씨에게 종이 속 과거의 자신은 다시 봐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의식의 흐름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2000년 8월 11일, 서태지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4년 7개월 만에 컴백이었다. 한 달 뒤인 9월 8일 그의 앨범이 발매됐고, 바로 다음 날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그의 컴백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 실황은 9월 12일 MBC에서 방송됐다. 추석 연휴가 낀 화요일이었다. 할 게 없던 나는 소파에 누워 그의 공연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어둡고 붉은 조명. 새빨간 레게 머리. 비싼 돈 주고 굳이 서서 콘서트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가 무대 밑에서 뛰어오르며 헤드뱅잉을 하는 순간, 뭔가 머릿속에서 쩍! 하고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를 붉게 물들이는 화염을 배경으로 그가 소리 질렀다.
“불타 버려! 우린 쓰레기인걸!”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서태지닷컴)
그게 정말 내 마음 어딘가 불을 질렀다. 공연 중 나온 짤막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6집 앨범을 현재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광기어린 스타일의 음악이라 설명했다. 스타일? 그럼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잖아! 방송이 끝나자마자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당시 국내 최대의 록-메탈 커뮤니티였던 ‘악마숭상자’ 카페를 발견했다. 일단 가입. 들어가 보니 같은 장르의 음악을 하는 데프톤스, 림프비즈킷 등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이미 회원들은 서태지가 6집 앨범을 들고 오기 전부터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뉴 메탈(Nu-metal)’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메탈과 힙합이 섞인 음악이었다. 서태지가 마음속에 불을 지른 이후, 나는 그곳에 서식하는 네임드 회원들을 통해 메탈음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초기 블루스가 어떻게 헤비메탈이 되었는지, 그것이 또 어떻게 악마주의 콘셉트의 데스메탈로, 또는 힙합과의 결합으로 분화되었는지 알려줬다. 운이 좋게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는 다양한 스타일의 메탈 음악들이 폭발적으로 파생되던 시대였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음악들 덕에 2000년 9월 12일에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10대 시절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내 일상을 바꿨음은 물론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메탈을 듣기 전과 비교해 성격이 한층 차분해졌다. 음악 속 사내들에게는 도무지 중간이란 게 없었다. 드러머는 스틱이 부러질 정도로 드럼을 치고, 보컬은 처음부터 끝까지 욕이 섞인 가사로 소리를 지르고, 기타리스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시끄러운 사운드를 쏟아냈다. 메탈 뮤지션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어딘가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가사 역시 그랬다. 더러운 세상! 가서 네 무덤을 파! 사람들은 다 똥이야! 우린 다 죽을 거라고! 나는 이내 그들의 절규에 빠져들었다. 극도의 흥분 속에서 앨범을 한 바퀴 듣고 나면 나른해지거나 허기가 졌다.
그리고 마음 속 어딘가가 후련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인간들이란 정말 다 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실제로 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을 직장 스트레스 해소의 장으로 삼는 게 아닌가 싶은 선생들이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유난히 많았다. 한 번은 친구가 수업시간에 거울을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0분 간 빗자루로 맞았다. 무려 김소월의 시를 좋아한다던 국어선생이었다. 선생은 빗자루 세 개를 부러뜨리고 나서야 매질을 멈췄다 (나는 누군가 저렇게 맞는 모습을 군대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런 일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어김없이 벌어졌다. 그보다 가벼운 수준의 매질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양 매일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때리는 이도 맞는 이도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침 8시 반이 되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지각한 애들 매타작하는 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면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그 소리를 배경삼아 자습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학교가 거대한 닭장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집에 온들 똥 같은 현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다 낡은 18평짜리 집에는 스무 살이 넘도록 내 방이랄 게 없었고, 비만 오면 다 떨어진 벽지에 곰팡이가 슬었다. 그런 현실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면 빌라 옥상에 올라가 이어폰을 끼고 악기를 부술 듯이 다루는 사내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 무렵 나는 세상에서 가장 티 나지 않게 분노하고 흥분하는 법을 터득했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친구들 몇몇은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에게 나이를 속여 얻어낸 술과 담배를 동네 뒷산까지 챙겨와 피우며 마셨다. 나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트렌드가 바뀌고 있으니까) 넌 랩을 해야 해. 스크래치도 하고 랩도 해야 해. 만일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내가 어떻게 할 줄 알아? 칼로 찔러 죽일 거야.” 라고 말한 판테라의 보컬 필립 안젤모의 썰을 커뮤니티에서 접하는 걸로도 충분했으니까. 하기 싫은 것을 강요하는 세상에게 “닥쳐 이 새끼들아!”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작지 않은 위로였다. 그에 비해 권력을 가진 어른들의 눈을 피해 동네 뒷산에서 몰래 하는 술 담배는 얼마나 멋없고 찌질한가. 2000년 9월 이전처럼 발라드와 댄스음악만 들었더라면 내 인생은 분명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메탈 음악을 들어온 지 올해로 20년째다. 사실 그 오랜 시간 내내 메탈만 들어온 건 아니다. 메탈과 꽤 오랜 기간 담을 쌓고 지내던 때도 있었다. 흑인 음악이 패권을 가진 시대. 지난 몇 년 간 많은 메탈 밴드들이 해체와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자연스레 그 정보를 제공하던 커뮤니티들도 쇠락해갔다. 사회인이 되면서 새로운 음악을 찾을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서랍 속 꿈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린 게.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내는 것이 목표가 된 게.
그러나 언젠가 밥 딜런이 말했듯,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꿈은 썩지 않는다. 우리가 세월에 풍화됐을지라도 당시에 꾼 꿈들은 썩지 않은 채 우리의 일상 어딘가에 남아 있다. 중학생 시절 끼적인 황당무계한 장래희망이 이제껏 살아남아 지금의 나와 마주한 것처럼. 퇴근 후, 책상에 앉아 이제껏 썩지 않은 꿈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했다. 뭐가 있을까. 15살의 내가 서른다섯의 나에게 추천해 줄 음악은.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틀었다. 후렴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