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2013년 여름이다. 처음에는 이 근방에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냥 가게에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거니 생각했나 보다. 나도 그때는 잠시 부모님의 일을 도와준다고만 생각해서 그러려니 했다. 조만간 떠날 곳이니까. 내가 당시에 처한 상황도, 고향의 환경도 그때는 마냥 불편했다. 아버지의 고향인데도 나는 그 동네가 낯설었다.
그렇게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 보니 어느덧 11년 동안 가게에서 청춘을 보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전부 나를 알아본다. 거짓말을 약간 보태서 가게 밖을 나서면 20미터 간격으로 인사할 사람이 생긴다. 바로 옆 중국집 사장님, 맞은편 카페 사장님, 그 옆 떡볶이집 사장님, 그 옆 편의점 사장님, 같은 건물 2층 치과 의사 선생님, 여기에 10년 넘게 우리 가게를 찾아오시는 단골손님들과 그들의 자제분들, 마트 직원들과 배달대행업체 기사님들 모두가 나를 안다.
쉬는 날에는 “그 젊은 친구 어디 갔어?”라고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도 꽤 계신다. 내일 출근할 때 전해달라며 시장에서 산 우유맛 사탕을 한 봉지씩 놓고 가실 때도 있다. 가게에 자주 오던 학생들도 길가에서 나를 보면 슬쩍 눈인사를 건넨다. 이 동네 일진부터 모범생들 모두 나를 안다. 적어도 이 동네에서 나는 새벽에 다녀도 안전하다.
사실 살아오는 내내 존재감이 희미했다. 유령이라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중학교 현장학습 때는 나를 놓고 학교로 복귀했는데도 집에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무단결석을 했을 때도 반나절 뒤에나 내가 담장을 넘었음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런 인간에게 수백 명의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은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흔히 하는 말처럼 사람의 삶이란 정말 알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연예인병 환자 같겠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당연히 그만한 책임감도 생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히 몸을 사리게 된다. 왜냐면 이 동네 사람들은 나를 ‘돈가스집 아들내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는 집안의 뿌리이자 아버지의 고향이다. 00촌 박가네 막내아들?이라고 하면 이 동네 어르신들은 대번에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때문에 부모님에게 이런 말들을 수없이 듣고 살았다. “동네 장사는 민심을 잃으면 끝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동네가 작을수록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이다”
전부 맞는 말이다. 동네에서 행실이 바르지 못해 구설에 오르면 가게에 바로 영향이 간다. 영업장 주변 동네가 작을수록 경제적으로는 서로 밀착돼 있을 가능성인 높으므로 더욱 몸가짐을 삼가야 한다. 설사 장사가 유지돼도 외지인들의 방문으로만 유지되는 장사는 위태롭고 서글프다. 결국 내가 어려울 때 지푸라기라도 던져주는 건 동네 사람들이다. 그만큼 주변의 협조를 얻지 못하는 장사란 괴롭기 짝이 없다. 이것이 꼭 텃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주치는 주변 상인들의 서먹서먹한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아플 수 있다.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장사에서 중요한 이유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대개 다 비슷하고, 마음을 그들의 마음을 여는 건 꽤나 사소하다. 항상 인사 잘하고, 근면하고, 몸가짐 조심하고, 가끔 찾아와 소소하게 매출 올려주며 안부인사 여쭈면 된다.
나는 부모님의 고향에서 그들이 일궈 놓은 장사를 함께 했지만, 내가 그 동네의 일원이 된 건 또 다른 얘기다. 위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다면 나는 가게에서도 동네에서도 여전히 겉도는 존재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장사를 이어받겠다고 뛰어들었지만 끝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가게를 내놓는 경우를 동네에서 꽤 많이 봤다. 그런 가게들은 천천히 외롭게 죽어간다. 반대로 내가 동네에서 인정받으면 가게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그만큼 더 올라간다.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방식을 택하든 이는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일할 때의 인격과 아닐 때의 인격은 다르다지만 자영업자에게 그 말은 반만 맞다. 길가에 침을 뱉거나, 주변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피우거나, 길가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것만으로도 가게의 평판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 사회인으로서 개개인은 각자의 역할로서 기억되기 마련이다. 바른 몸가짐도 장사의 연장이다. 다른 게 아니고 겪어보니 그게 곧 영업이더라. 평소 몸가짐을 바로하는 게 때로 백 장의 전단지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