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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Mar 22. 2022

3. 비 내리는 날의 진주 찾기

인생은 타이밍, 임장도 타이밍

임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당일치기로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아무리 동선을 효율적으로 짠다 해도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주말마다 운전을 도맡아 하는 남편은 오죽하겠나 싶어, 아싸리 느긋하게 여행도 할 겸 회사에 이틀 휴가를 내고 3박 4일로 일정을 잡아버렸다.


요즘 들어 국내 숙소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나 강원도 쪽은 더 그랬다. 어차피 이번 여행의 목적은 휴식이 아니었으니 굳이 비싼 숙소를 가는 것은 낭비라 생각했고, 적당히 괜찮다 싶은 곳은 빈 날짜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가성비 좋은 숙소 한 곳. 그나마도 방이 딱 한 개가 남았다. 다급한 마음에 결제부터 하고 위치를 자세히 보니 양양이다. 뭐? 양양? 우리가 땅을 보러 가야 할 동네는 횡성인데 너무 먼 곳을 숙소로 잡았다. 양양에서 횡성이면, 서울에서 횡성을 가는 것과 시간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별 차이가 없다. 평소 같으면 무엇보다 신경썼을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실수를 했다는 건, 그날따라 무언가에 홀린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숙소를 다시 알아보는 대신 그냥 양양 가는 길에 한 곳을 들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한 곳을 들르고, 중간에 하루 시간을 내서 두세 군데 정도를 둘러보는 선에서 타협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이내 비가 쏟아져 내린다. 하필 또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날 이런다. 임장 날 간간이 비가 내렸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건 처음이었다. 오늘 둘러보기로 한 땅은 총 세 군데. 임장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 계획대로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도로를 달리는 내내 앞 유리 와이퍼가 쉬지 않고 비를 닦아내야 할 정도였으니, 차에서 내려 땅을 보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우산을 쓰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대부분 토목 공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땅이라 걸음을 디딜 때마다 진흙에 신발이 빠지기 일쑤였다. 그 상태로 다시 차에 타니 차 안이 또 엉망이 되고, 우산을 써도 몸은 비에 다 젖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첫 번째로 들른 땅에서는 꼼꼼히 따져 볼 정신도 없이 대충 주변 분위기만 보고 잽싸게 떠나야 했다.


포동리 토지는 그날 두 번째 코스로 방문한 곳이었다. 목적지를 1킬로미터 앞두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면 시내도 가깝고 이만하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마을길로 접어드는 순간 뭐랄까. 이건 마치 영화 속 시실리로 들어선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 초입에 자리한 민가 두어 채를 지나니 주변이 온통 산자락이다. 아스팔트 도로는 진작에 끝이 났고 군데군데 움푹 패인 자리엔 이미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겼다. 초봄 꽃샘추위에  황량함이 가시지 않은 풍경과 세차게 내리는 비, 오후 3시인지도 모를 정도로 캄캄해진 하늘은 한껏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여기쯤인 것 같은데……”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목이 임야답게 마른 나무들로 빽빽하게 뒤덮인 땅은 맑은 날에도 진입하기 어려워 보였다. 임장을 다니다 보면 땅 모양을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 손을 하나도 타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토지를 만나기도 하는데, 포동리 토지가 딱 그랬다. 업자가 잘 닦아놓은 전원주택 터를 잘 세공된 진주 목걸이에 비유한다면, 나는 지금 흙 속에 깊이 파묻힌 쌩(?)진주를 찾으러 다니는 초보 다이버랄까. 부동산 중개인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내 취향에 맞는 땅을 찾으려면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토지는 면 시내와도 적당히 가깝고,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산길에 위치해서 적당히 외진 느낌이라 딱 우리가 찾던 땅에 가깝긴 한데...... 옆을 보니 남편은 이미 이곳에 오만정이 다 떨어진 듯하다.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안 내릴 거지?”

“응.”

“그럼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 출발하는 차. 내심 아쉬웠으나 나조차도 그 비를 뚫고 땅을 볼 자신이 없었다. 타이밍. 그래, 이건 타이밍이 안 맞는 거다. 아무리 좋은 땅도 날을 잘못 맞춰 보러 오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니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빗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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