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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Mar 23. 2022

4. 이웃 잘못 만날 뻔한 썰

어딜 가나 사람이 문제

두 번째 땅은 포동리에서 25km 정도 떨어진 안흥면 지구리에 위치해 있었다. 같은 25km라도 시골길은 도시처럼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많다 보니 시간상으로는 두 배가 넘게 걸리기도 한다. 다행히 가는 동안에 비가 조금씩 잦아드는 것이 보였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완전히 개었다.


역시 날씨 때문인가. 첫 번째 땅보다 뭔가 첫인상이 훨씬 다. 일단 아스팔트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알아볼 것도 없이 건축이 가능한 땅이었고, 우리 땅만 지대가 높아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답답한 느낌 하나 없었다. 도로 건너에는 물멍 때리기 딱 좋은 소담한 개울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땅 뒷편, 그러니까 야트막한 뒷산을 끼고 돌자마자 주말 주택으로만 쓰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마을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외지인 몇 가구 정도만 모여 살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적하고 조용했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새 울음소리와 바람소리, 물소리만 평화롭게 들려온다.


“난 여기 마음에 들어!”


날씨도 좋겠다, 땅도 마음에 들겠다, 한껏 신이 난 내가 당장에라도 계약할 기세로 말하자 남편이 세상 신중한 척 대답한다. 뭐, 나쁘진 않은 것 같아.


정보를 좀 더 얻고 싶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끼리 둘러보는 게 다였다. 부동산을 끼지 않고 내가 직접 주소를 찾아내서 온 곳이라 갑자기 나와달라 연락하기도 좀 민망한 일이었다. 내일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들르기로 하고 부동산에 연락해 약속도 잡았다. 왠지 느낌이 다.


다음날, 일찌감치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안흥면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부동산 아저씨가 먼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안흥에는 우산을 쓸까 말까 할 정도로 애매한 양의 비가 내렸는데, 단단히 콩깍지가 씌인 건지 그마저도 운치 있어 보였다.


“다시 봐도 맘에 들어.”


남편의 귀에 속삭였다. 부동산 아저씨는 땅의 역사(?)를 읊기 시작했다. 전 주인이 옹벽을 얼마나 튼튼하게 쌓았는지, 왜 이 좋은 땅을 내놓게 되었는지, 주변 시세 대비 가격이 얼마나 괜찮은지 등등 귀에 쏙쏙 들어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주말 주택으로 보인다던) 뒷집에서 차 한 대가 나왔다. 어제는 분명 인기척이 없었는데, 그새 주인이 와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마침 토요일이다. 주말 주택인 것 같다던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어유, 김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부동산 아저씨가 아는 사이인 양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김 사장이라고 불린 이웃집 아저씨는 보조석 창문을 내리고 시선과 손짓으로만 도도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는 다시 유유히 출발했다.


“아는 사이신가봐요?”

“아, 저분 사시는 집이랑 땅을 저희 부동산에서 중개했거든요.”


그렇게 대답하는 부동산 아저씨의 표정이 어째 오늘 먹은 아침식사가 얹힌 것 마냥 불편해 보인다. 괜스레 궁금증이 올라와 입을 떼려던 찰나, 이미 떠난 줄 알았던 이웃집 아저씨의 차가 후진을 하더니 다시 우리 앞에 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참, 그 얘기 들었지? 내가 요 땅 소송 걸었다는 거.”


엥? ‘요 땅’이라 함은…… 설마 우리 땅을 말하는 것인가……!


“내가 말 안 한 것 같아서 말야.”


부동산 아저씨 얼굴이 사색이 되어간다. 뭐야, 이거. 무슨 일이야.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 둘을 두고 두 아저씨가 무언가 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한 곳에 집중했다. 사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소중한 매수 후보자들이 휑하니 돌아서기라도 할까 겁이 난 부동산 아저씨는 목소리를 낮추고 싶어했으나, 거리낄 것 없어보이는 이웃집 아저씨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이웃집 아저씨가 현 토지주를 상대로 우리가 점 찍어둔 이 땅을 소송 건 게 맞고,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론 지어진 건 없는 듯 했다. 한 마디로 골치 아픈 땅이라는 소리다. 두 아저씨의 대화가 끝나고 이웃집 아저씨가 차를 몰고 떠나자 부동산 아저씨가 어렵게 입을 뗐다.


“다른 땅은 마음에 드는 거 없으셨어요? 이 땅은 소개시켜 주고도 욕먹을 땅이네요.”


그러니까 이건 마치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에게 사귄 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가 있더라’와 같은 종류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랄까.


좀 더 자세한 내막은 이러했다. 우리가 점 찍은 토지를 포함, 이 일대 대부분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신 여사'란 사람이 있는데, 이웃집 아저씨 땅 또한 원래 이 신 여사의 소유였다고 한다. 신 여사에게 땅을 산 이웃집 아저씨는 그 바로 앞의 땅, 그러니까 우리 토지와 아저씨 토지 사이에 낀 작은 땅도 매수하길 원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신 여사가 거절했고, 그 일을 계기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웃집 아저씨는 신 여사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더니 급기야 소송에까지 이르렀다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가 땅을 매수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거나- 소송 전문가(?)를 이웃으로 둔다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껴안고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전 주인과 사이가 안 좋은 상황에서 기어코 그 땅을 매수한 새 주인을 고깝게 보지 말란 법도 없다. 굳이 차를 돌려 와서까지 부동산 아저씨에게 소송 얘기를 한 건 ‘늬들, 골 아프고 싶지 않으면 이 땅 사지마!’라는 일종의 경고였을 테니. 결과가 뻔히 보이는 도박을 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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