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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Mar 24. 2022

5. 가계약금 500만원 날릴 뻔한 썰

부동산 아저씨 말은 50%만 믿을 것

이후로 춘천, 홍천, 원주, 평창까지 내 땅을 찾아 반 년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당시) 최종 선택은, 비 오는 날 학을 떼고 돌아섰던 포동리 토지였다. 사실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지 800평이라는 땅 크기와 횡성호수에 근접한 위치, 민가가 적당히 떨어져 있는 주변 환경까지 마음에 들었다. 고민 끝에 포동리를 다시 방문했다. 그날은 아주 화창했다. 맑은 날 다시 보니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바로 그려진다. 역시 날씨가 문제였나. 서글서글한 인상의 부동산 아저씨가 이 가격에 이만한 땅이 없다며 으레 하는 업자 멘트를 날린다. 마지막 전봇대가 600m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느 땅이나 100% 성에 찰 수는 없으니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다. (대충 계산해보니 전기 끌어오는 것만 2천만원 돈이었는데, 땅값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2천만원을 포함해도 예산내로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튿날, 토지주와 가격 합의가 되었다며 부동산 아저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백만원이라도 더 깎고 싶은 것이 매수인의 마음인 것처럼, 반대로 단돈 몇십이라도 더 받고픈 것이 매도인의 마음일 것이다. 협상의 여지가 더는 없어 보이는 뉘앙스에 잠시 고민하다 알겠다고 답했다. 부동산 아저씨는 약속의 의미로 가계약금 500만원을 본인 통장으로 입금해 달라고 덧붙였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계약하기로 마음을 굳혔으니 50이든 500이든 별 상관은 없었다. 다만 그 큰돈을 얼굴 한 번밖에 못 본 중개인을 믿고 보내기엔 내가 의심이 좀 많은 편이라, 그냥 매도인 계좌로 바로 입금하겠다고 했다. (해당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떼면 매도인 이름과 생년월일, 현재 살고 있는 주소 정도는 확인이 가능하다) 아저씨는 떨떠름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럼 그렇게 하라며 매도인의 계좌정보를 보내주었다.


"이 토지, 분명 건축 허가 난다고 하셨어요. 허가 안 나면 계약 파기인 거 아시죠?"

"아, 그럼! 내가 군청에 아는 사람만 몇인데. 벌써 다 확인한 거라니까."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계약 파기니 뭐니 운운하며 혹시 몰라 통화 녹음까지 해두었다. (미리 말하자면 그건 신의 한 수였다) 정식 계약까지는 앞으로 1주일. 나는 그 1주일 안에 이 토지의 모든 리스크를 파악하고, 해결 불가능한 변수가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땅이라고 해거기에 내맘대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땅 한 필지에 작은 원룸이라도 하나 짓기 위해서는 관공서를 밥 먹듯 드나들며 수많은 허가의 관문통과해야 한다. 그 중 하나라도 삐끗하는 순간, 그냥 그 땅엔 텐트나 치고 개인 캠핑장 용도로밖에 쓸 수가 없다.


전기를 끌어오는데 돈이 많이 들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니 패스. 그 다음은 체크리스트는 도로다. 차가 지나다니는 3m 폭의 도로가 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 역시나 의심이 많은 나는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직업병이기도 하다) 군청 조직도를 보며 도로, 건축, 허가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부서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물었다. "포동리 산 000-0번지, 건축 가능할까요? 집 지으려고요."


민원인의 질문에 대한 공무원의 답변은 매우 보수적이고 애매하다.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한데 확실한 건 아니예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지금 상황에선 그게 맞긴 한데 서류 넣어봐야 알 수 있어요, 등등. 이해한다. 함부로 대답했다 틀리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을 어찌 하겠는가. 혹시라도 일이 잘못 됐을 경우, 눈에 쌍심지를 켜고 탓할 사람만 찾고 있을 민원인의 먹잇감이 되고 싶은 공무원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내 문의에 대한 답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건축이 가능할 걸로 보여지는데, 서류 넣어봐야 확실히 판단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매일 하루에 한 통씩 꾸준히 전화를 걸었다. 3일째쯤 되었을까. 앳된 목소리에 어딘가 의욕이 묻어나는 공무원 한 에게서 드디어 원하던 답을 들었다.


"제가 요거 한 번 확인해 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오후가 되니 약속한대로 다시 전화가 왔다. 걱정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반갑게 수신 버튼을 눌렀다. 답변 내용은 청천벽력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건축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지금 접해 있는 도로가 3m 폭이긴 한데, 임도(林道)라서 아마 허가 안 날 거예요."


임도(林道)는 '임산물의 운반 및 산림의 경영관리상의 필요로 설치한 도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는 차나 산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도로인 것이다. 내가 도로라고 생각했던 길이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한 요건을 갖춘 '정식 도로'는 아니었다니. 방법이 없진 않다. 굳이 이 땅에 건축을 하고 싶다면, 아스팔트 포장이 끊긴 지점부터 내 땅까지 600m 정도되는 구간을 도로로 포장하면 된다. 참고로 도로 600m를 깔려면 수억의 돈이 들어간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 나는 곧장 부동산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이야기] 가계약금 500만원은 무사히 돌아왔을까? + 시골땅 매매 시 최소한 '이것'만큼은 꼭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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