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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Oct 06. 2017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

헤어진다는 것, 그 무의미함의 의미

  서로가 서로에게 더 이상 간절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며, 너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자 했지. 나 또한 요즘 들어 네가 말한 것과 비슷한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알겠다고 했어.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걸까.


  벌써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헤어져, 혹은 그만 만나자 같은 그 흔한 마무리 인사도 없이 이토록 흐지부지하게. 바림질한 그림처럼 엷어져 가던 서로의 온기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가끔은 우리가 정말 헤어진 게 맞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왜, 언제나 끝은, 시작만큼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걸까.


  솔직히 겁이 났다. 먼저 연락을 하면, 확인사살이라도 당하듯 냉정하게 변한 너를 마주하게 될까봐. 차라리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두는 것이 아픈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다, 라는. 넌 부질없는 짓이라 하겠지만, 소외된 마무리에도 그렇게 미약한 존재감이나마 부여한다면 약간의 위로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너를 탓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최선을 다 했다는 걸 안다. 내가 만족하지 못했을 뿐. 너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내가 아무리 우겨도, 결국에는 네 말이 다 맞았다. 변함없이 널 사랑할 거라고 자부하던 나에게, 언젠가 너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 마음은 다 변하는 거야. 지금은 그럴 것 같아도, 나중엔 또 모르지. 이번에도 네가 옳았다.


  처음에 느꼈던 그 감정은, 아무리 돌이켜 곱씹어 보아도 분명 사랑이었다. 다만 너의 말처럼, 변한 것은 나였다. 내 마음 속의 첫 순위가 너에서 나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배부른 투정이었을까.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했던 시간들이 지나자,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느껴졌다. 점점 모나지는 나의 모습에 너도 조금씩 지쳐갔겠지. 어쩌면 그 날의 흐지부지한 이별은, 서로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후회가 찾아온다 해도, 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 꿋꿋이 앞으로 걸어갈게.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문득 네 온기가 그리워질 때면 숨겨놨던 추억들을 꺼내 이불 삼아 덮어볼게. 이제와 해줄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없기에, 그저 네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야. 진심으로.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라도 너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으면.

  그리고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날의 인사를, 언젠가 웃으면서 건넬 수 있기를. 딱 그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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