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명의 찾기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서 안 사요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가 급하게 필요해서 가까운 마트에 갔습니다. 그 봉투를 한 번도 구매해 본 적이 없는 저는 계산대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 담는 봉투 있어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꺼내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근데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서 안 사요. 요 밑에 철물점이 훨씬 싸거든요."
아하! 저는 고마움의 표시로 살짝 목례를 하고 나왔습니다. 철물점에 가보니 과연 엄청난 양의 봉투를 매우 싼 값에 팔고 있었습니다. 그 직원은 저에게 일종의 '고급 정보'를 알려준 셈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1. 저 사람 재활용 쓰레기봉투 한 번도 안 사봤구나...
2.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계속 여기서 비싸게 사겠네.
3. 나라면 절대 안 살 텐데... 알려줘야겠다.
같은 소비자로서,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정보'를 모르는 저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니었을까요?
숨은 명의를 찾아내는 질문
'고급 정보'란 업계 사람들만 알거나, 혹은 일부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제한적인 정보를 뜻합니다. 우리는 금융기관에서 홍보하는 상품이 그들 돈벌이에는 좋을지언정 '나에게' 좋은 건 아님을 압니다. 출판사에서 홍보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나에게' 좋은 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요. 삐까뻔쩍해 보이는 레스토랑이 식자재의 상태도 좋은가? 역시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알짜배기 정보를 궁금해합니다. 금융인들이 몰래 투자하는 상품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읽는 책은? 정말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곳은?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떤가요? 내가 또는 가족이 아파서 진료나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 갔더니 같은 진료과에 의사가 3명, 4명, 5명씩 있습니다. 누구한테 가야 하지? 가장 유명한 대학을 나오고 이력이 제일 긴 사람을 선택하시나요? 아니면 '구관이 명관이지' 하며 무조건 나이 많은 의사를 선택하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가차 없이 스튜핏!입니다. 단순 감기로 갔다가 항생제만 잔뜩 받아올 수도 있고, 구닥다리 옛날 방식으로 수술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의사, 숨은 명의를 찾아내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직원들이 제일 많이 찾는 분이 누구예요?"
환자들이 원하는 진짜 정보
수술실에서 근무할 때, 다른 부서 직원이나 동네 주민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진료 보려고 하는데, 누구한테 가야 돼요?"
병원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해당 의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신 학교, 경력, 논문, 학회 활동에 대해서요. 하지만 굳이 저에게 와서 묻는 이유는 그 외의 것들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1. 같이 일해보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야?
2.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양심적으로 행동해?
3. 당신이라도 그 사람에게 몸을 맡길 수 있어?
실제로 간호사들은 누가 항생제를 남용하는지, 환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비급여를 남발하는지, 심지어 어떤 의사가 로비와 리베이트에 찌들어 있는지까지 속속들이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르는 척 지낼 뿐이지요) 반대로 누가 상대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대하는지, 환자를 중심에 두고 최선을 다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이러한 '고급 정보'를 수집해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병원도 있습니다. 모 병원은 몇 년 전, 의사를 제외한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간호사뿐 아니라 물리치료사, 응급구조사, 원무과 직원, 영상의학과 직원이 모두 포함됐지요. 익명으로 응답하는 설문지에는 의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고,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의사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추천할 수 있습니까?
1)절대 아니다 2)아니다 3)보통이다 4)그렇다 5)매우 그렇다
그렇게 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기투표가 아니다
이건 인기투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입니다. 직원들이 유머감각 있고 성격 좋은 의사를 추천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수술방에서 아무리 난리를 치고 까다롭게 굴어도, 그것이 환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면 간호사들은 이해합니다. 대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아프면 제 발로 찾아가지요. 반면, 아무리 친절해도 환자를 존중하지 않고 도덕관념이 떨어지는 의사는 가장 먼저 직원들이 알아봅니다. 함께 웃으며 일하더라도 환자로 찾아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TV에 나오지 않더라도 본분을 다하며 기본을 지키는 분들이 곧 명의입니다. 우리 동네의 명의를 알고 싶으신가요? 그 병원의 직원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최선은 모르더라도 최악은 면할 수 있지요.
마트 직원이 그랬듯이 '나라면 절대 사지 않을' 무언가를 건네는 건, 그게 쓰레기봉투라 할지라도 힘든 법이니까요. 사람 마음이 그렇습니다.
엄지 umji.let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