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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모 Aug 04. 2019

우당탕탕 독일 여행기.

#1. 공항에서

 우리는 행선지를 독일로 정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수많은 여행 후보지 중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말은, ‘일정이 현실적이다’라는 뜻이다. 휴가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밖에 내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나마 유럽 쪽에서 금요일 밤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곳이 독일이었다. 인천에서 금요일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이스탄불에서 한번 환승을 하면, 독일 시간으로 토요일 오전 10시 정도에 베를린에 내릴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편도 고려해야 했다. 독일 시간으로 토요일 저녁 6시반에 비행기를 타면 한국에는 일요일 저녁 5시쯤 도착할 수 있었다. 빠듯하지만, 일요일 저녁에 여독을 풀고, 출근을 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사실, 내가 고려한 건 일정뿐이었다. 이단이 독일 교환학생으로 1년 살다가 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최선의 장소였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독일을 간다고 말하면, 다들 왜 가는지 물어봤다. 그때마다 이단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나도 그때는 그 시선을 즐기며 편안한 휴식같은 여행을 기대했다. 물론, 그 기대는 인천공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라졌지만.


 회사로 캐리어를 끌고 갔다가 퇴근을 한 나와는 다르게 이단은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있었다.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던 이단은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다짜고짜 키오스크로 나를 끌고 갔다. 각 자가 키오스크 한 대씩을 잡고 섰다. 나는 나의 순백의 전자여권을 밀어넣었다. 최근 10년간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조금 헤매는 사이, 관록의 이단은 거침없이 절차를 밟아갔다. 인천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표의 좌석을 확정하더니, 그 다음은 이스탄불에서 베를린 가는 좌석을 확정하려는 듯 좌석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뜻밖에 자리를 선택해버렸다.


“뭐야? 베를린까지는 떨어져 가자는 거야?”


 여행 가기 전 날,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에 최후의 수로 둘다 복도 쪽에 앉아서 가자는 전략을 짰다. 당연히 최후의 수였고, 나는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단은 그 최후의 전략을 나와 상의 하지 않은 채, 실행에 옮겼고, 우리는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게르만의 나라 독일까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가게 됐다.


 물론, 나의 순백의 여권이 키오스크에 읽히지 않았다는 점. 우리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언의 재촉을 당했다는 점등이 작용했지만, 이단의 당황스럽게도 귀여운 백치미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들었다.


‘아, 같이 가는 여행이었는데, 너무 이단에게만 맡겼구나.’


 사실 이단은 진작부터 휴가 중이었다. 나보다 마음의 여유가 많을 거라는 오산에 내가 여행에 대한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공항에서 깨달아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왕 가기로한 것을. 우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 하고, 일단은 이스탄불까지는 사이좋게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로밍을 신청하고, 밥을 먹었다. 이단이 탑승 수속을 하고 들어가서 밥을 먹자고 했는데, 나는 왠지 그 안엔 먹을 게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안에는 면세점 밖에 없을 줄 알았다. 구태여 밖에서 맛없는 부대찌개를 마지막 한식이라고 먹고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밥집이 많아 민망했다. 하긴, 내가 마지막으로 해외에 나간 게 10년 전이니까. 내가 뭘 알겠는가.


 그렇게 서로의 불찰을 하나씩 주고받으면, 우리는 그래도 들뜬 마음으로 손잡고 공항을 돌아다녔다. 배도 부르고 커피도 마셨는데, 그것도 공항이라니! 그제야 여행가는 실감이 느껴졌다. 문득 독일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어떤 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혼여행은 아니지?”


 하긴, 유럽은 신혼부부가 가고, 연인 사이는 주로 휴양지를 가니까. 우리는 왜 하필 독일을 택한 걸까? 독일이 주는 내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이 때는 알지 못 한 채, 우리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탑승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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