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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모 Jul 04. 2017

1화. 라디오의 정석, 정오 12시 방송.

새로운 맛에 처음 도전할 때는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집으로 시작해야 된다. 우리가 아는 맛 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듣는 맛도 마찬가지. 일단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지상파 3사의 정오 라디오로 일단 입문해보자. 전형적인 음악토크쇼 프로그램이자, 기본이 20년은 넘은 방송들이다. ‘최화정의 파워타임,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이수지의 가요광장.’ 3사의 자존심이자, 라디오의 역사다. 이 전통의 라디오 맛집들의 역사도 배워보고 추천메뉴도 알아보자!


<최화정의 파워타임>

-역사와 특징

세 개의 라디오 방송이 맛집이라면, 유일하게 셰프가 바뀌지 않은 프로그램. 개장 이래 듣는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최화정의 파워타임은 SBS파워FM이 개국한 1996년에 함께 런칭했는데, 그날부터 방송도 DJ도 바뀌지 않았다. 기본 포맷은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DJ와 게스트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형식이다. 라디오의 전형적인 포맷인데, 최화정 특유의 사이다 같은 듣는 맛이 일품이다.


-추천메뉴 BEST3.


1.목동연애연구소

라디오 사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애사연이다. 라디오 연애 사연은 내 연애의 타산지석이 되는 좋은 밑거름이 되는데, 가끔은 너무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에 빠진다. 목동연애연구소는 그런 의문을 깔끔히 해소한다. 좋은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이 패널로 나온다. tv에서 연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 김지윤 소장이 맞다. 연애의 늪에서 갈팡질팡 하는 청취자들을 주로 혼내는 말을 많이 하는데, 따져보면 다 피와 살이 되는 말이다. 최화정이 가끔은 김지윤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명쾌한 답변으로 일갈한다. 미련한 연애 때문에 고생 중인 사람이라면 사연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아 참, 김주우 아나운서도 함께 나온다.


2.공유라디오

홈쇼핑의 마법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얻어 걸린 홈쇼핑 방송에 귀신같이 홀려 본 사람이라면, 이 코너를 들어보자. 쇼호스트 동지현, 이민웅이 게스트로 나오는데, 듣고 있으면 눈 앞에 홈쇼핑이 펼쳐진다. 홈쇼핑의 마력은 쏘쏘한 상품도 명품관 제품 남부럽지 않게 만드는 재주인데, 이 코너도 마찬가지. 청취자들의 일상의 실수담을 공유한다고 해서 ‘공유라디오’인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실수를 세상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디제이와 게스트들도 경험한 비슷한 실수담을 함께 나눠서 더 듣는 맛이 풍성하다.이불킥할 실수를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 들어보자.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고 자위할 수 있다.


3.내 멋대로 넘버7

말하자면 계절 별미다. 이 코너가 베스트3 안에 든 이유는 현재 게스트로 나오는 권혁수 때문이다. 청취자들이 직접 상황에 맞게 선곡한 음악 7곡을 선정해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서 보내주는 코너인데, 게스트가 자주 바뀐다. 다시 말해, 게스트가 누구냐에 따라 코너의 부침이 생기는데 지금 권혁수는 더할 나위 없는 게스트다. SNL에서 보여주는 더빙극장의 권혁수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거기다 ‘나 혼자 산다’에서 나온 다이어트의 아이콘으로서 모습도 들려준다. 최화정과 주고받은 다이어트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권혁수가 붙박이 게스트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팬이라면 일단 듣고 보자. 아! 그리고 코너의 취지대로 선곡에 자신있는 당신이라면 베스트7을 선정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총평

20년 넘은 진행 솜씨가 돋보인다. 학교 앞 분식집 맛이 그리워 오랜만에 찾아가도 똑같은 모습과 맛으로 반겨주는 사장님 같다.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다 똑같은 맛이 난다는 것. 제육볶음을 시켜도 된장찌개를 시켜도 똑같은 맛이 나는 분식집처럼 코너 간에 차별성이 없다. 하지만 라디오의 듣는 맛이 무언지 잘 모른다면 입문용으로 강력 추천하는 방송임에는 분명하다.


<이수지의 가요광장>

-역사와 특징

K본부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최화정의 파워타임보다는 10년 더 일찍 시작했다. 86년 런칭 이래, 지나간 DJ만해도 여럿. 최근에는 개그우먼 이수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DJ가 바뀐 지 얼마되지 않아 신선한 맛이 있다. 청년창업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를 하고, 사장님도 친절하다. 개그콘서트에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줬던 이수지와 인간 이수지를 모두 들어 볼 수 있다.


-추천메뉴 BEST3.


1.이게 바로 연애의 정신!

역시 전형적인 연애 상담 코너다. 최파타에 김지윤 소장이 있다면, 가요광장에는 좀 모자란 두 남자 홍진호, 슬리피가 있다. 까랑까랑한 전달력으로 무장한 김지윤 소장에 비하면 이 두 남자의 전달력은 형편없다. 한 명은 말이 빠르고, 한 명은 방송의 맥을 못 짚는다. 그럼에도 이 코너가 베스트3 안에 든 것은 두 남자의 진솔함 때문이다. 때로는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연애 상담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수가 있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좀 모자라는 두 남자의 순수한 답변이 가끔은 더 와 닿는 법. 연애에 상처가 많아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두 남자에게 사연을 보내보자. 여담이지만 홍진호 별명이 ‘콩’인데, KBS 라디오 어플리케이션 이름이 ‘콩’이다. 콩이 콩으로 사연을 보내달라고 말 하는 것을 들어보는 것도 백미.


2.아무 말 대 환영.

주력 메뉴이자, 야심찬 기획 작품이다.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고유한 웰빙 메뉴다.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을 설명해주고, 청취자들에게 우리말을 활용한 ‘아무 말’을 문자로 즉석에서 받아본다. 잘 와 닿지 않는다면 그 옛날 ‘상상플러스’의 ‘우리말 더하기’의 라디오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인 타일러와 도경완 아나운서가 우리말을 꽁트로 풀어주는데, 어색함은 청취자의 몫이긴 하다. 연애 상담, 가족 이야기 일색인 라디오 판에서 도드라지는 코너다. 제작진의 고충이 느껴지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감이 돋보인다. 단점이라면 언중(言衆)이 잘 쓰지 않는 말까지 끄집어내서 알아야하나 싶지만, 외래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런 라디오 코너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꽈아!


3. 익명보장 대나무 숲

제목에 답이 있다. 트위터에서 유행했던 ‘대나무 숲’에서 따온 코너인데, 말 그대로 실명으로 밝히기가 어려운 이야기를 익명으로 하는 코너다. 개그콘서트의 서태훈 이상훈이 게스트로 나와 청취자들의 말 못 할 비밀을 함께 들려주는 시간이다. 너무 이기적인 친구, 일 너무 많이 시키는 상사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출연자들이 개그콘서트 상황에 빗대어 이야기를 해준다. 평소 더 앞고 싶었던 개그맨들의 뒷 이야기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청해야 하는 코너.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트위터에서 대나무 숲이 유행한 건 좀 오래전 일인데 새로 런칭한 방송만의 신선함은 떨어진다. 또 대나무 숲은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들의 유일한 고충 통로였다. 희화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총평

사장님 바뀐 지 얼마 안 돼서 일단 친절하다. 신장개업 기념으로 선물도 펑펑 쏘고 있어 청취자들 유입도 많은 듯. 하지만 지나치게 안정적인 진행으로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버해서 가자니, 경쟁 방송인 김신영과 차별점이 없을 우려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가끔은 너무 차분한 구성으로 심야방송처럼 느껴진다. 이수지를 좋아하고 개그콘서트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볼 만한 방송이다.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역사와 전통

3사 중 가장 오래된 방송이다. 1971년부터 시작해 2009년 봄개편 때 잠깐 폐지됐지만, 다음 해 가을 개편 때 부활했다. 이상벽, 유인촌, 김현정, 김원희, 정선희 등 거쳐간 DJ의 이름만 봐도 무게가 느껴지는 방송이다. 2012년부터는 김신영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색깔이 분명하다. 식당으로 치자면 욕쟁이 할머니 스타일이다. 주는 대로 쳐 먹어야 되는 집이지만 맛있다!


-추천메뉴 BEST3.


1.이 노래 뭐게?

김신영의 김신영에 의한 김신영을 위한 코너라고 본인이 직접 말한다. 말 그대로 김신영 혼자 진행하는 코너인데, 그것도 매일 코너다. 식당으로 치면 밑반찬 같은 코너인데 메인디시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겉절이 김치가 이 집에서 제일 맛있다. 형식은 노래 제목을 맞추는 퀴즈다. 노래 가사를 바탕으로 김신영이 1인극을 펼치는데, 이 1인극을 듣다가 노래 제목을 청취자가 문자로 보내는 형식이다. 특징은 김신영이 1인극을 매일 다른 사람 목소리를 빌려서 한다는 건데, 여기서는 목소리 달란트라고 부른다. ‘밥 집 아줌마’, ‘부동산아저씨’등 매일 다른 사람이 나와 가사 힌트를 주는데 정말 혼자서 일당백을 하는 시간이다. 밑반찬만 먹어봐도 그 집 솜씨를 알 수 있듯이, 이 코너만 들어봐도 정오의 희망곡의 클라스를 알 수 있다.


2. 차이나! 차이나!

예전에는 라디오에서 영어 회화 한 마디를 배워보는 코너가 열풍이었다. 이제는 중국의 부상을 반영한 것인지 이 코너에서는 중국어 한 마디를 배워본다. 피에스타의 차오루가 게스트로 나와서 중국어 회화 한 마디를 가르쳐주고, 중국에 대한 잘못된 상식도 바로 잡아준다. 코너 말미에는 사자성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들려주는데, 우리가 읽는 방법과 중국어가 얼마나 다른지 들어볼 수 있다. 차오루의 엉뚱한 매력과 김신영의 엉뚱한 중국어 발음의 캐미가 폭발하는 시간이다. 사실,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딱히 도움이 되겠나 싶지만 그래도 라디오에서 중국 원어민 발음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다. 매일 코너이니, 매일 매일 차오루와 중국어에 빠져보자.


3.금.발.라 & 붉은 밤

프로그램명이 ‘정오의 희망곡’인데 아이러니하게 발라드를 희망하면 안 틀어준다. 이유는 정오 방송인데 심야 방송처럼 너무 쳐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발라드는 금요일에만 틀어주는 코너를 아예 만들어 버렸는데 ‘금요일엔 발라드’라고 줄여서 ‘금.발.라.’ 라고 부른다. 차분한 BG를 깔고 심야 DJ처럼 나래이션을 하는데 그래서 더 웃긴다. 특히 샤이니 종현이 자정에 진행하던 ‘푸른 밤 종현’을 오마주해 ‘붉은 밤 종현’으로 패러디하는 시간도 있는데 종현의 특징을 그대로 흉내 내는 김신영의 복사 능력을 제대로 들어볼 수 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종현은 이제 푸른 밤을 진행하지 않는 다는 점. 그럼에도 붉은 밤 종현은 계속된다. 역시 김신영 혼자 진행하는 코너이다.


-총평

웃긴다. 정오에 웃고 싶다면 더 이상 대안은 없다. 정오의 희망곡이다. 특이점으로는 서브작가가 보조 진행자처럼 같이 진행을 하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 단점이라면 김신영이 말을 너무 많이한다. 게스트가 누가 나왔는지 지나고 나면 기억이 잘 안 난다. 개성 강한 진행자가 양날의 검인 이유다. 김신영의 웃음코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든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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