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게 느렸다.
버스는 늦게 왔고,
커피는 평소보다 오래 걸려 나왔다.
일이 꼬이듯 흘러가던 하루였다.
예전 같으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오늘은 왜 이렇게 늦지?”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가을 햇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그 단순한 풍경이
괜히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 세상은 내가 급하지 않아도 흘러가는구나.’
그 단순한 깨달음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늘 서둘러야 한다고 믿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뒤처질 것 같았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보니,
그동안 놓쳤던 게 너무 많았다.
하늘의 색, 바람의 냄새,
그리고 내 마음의 소리까지.
빨리 가는 동안 나는
내가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속도를 늦추면
세상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의 표정이 보이고,
작은 친절이 눈에 들어온다.
삶이 조금은 다정해진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나는 노트를 펼쳤다.
그 위에 이렇게 썼다.
“오늘은 늦게 가서 다행이었다.”
천천히 간다고 해서 잃는 건 없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의 리듬’을 되찾는다.
누군가보다 늦더라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삶의 속도는 남이 정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정하는 것이라는 걸.
언젠가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너는 늘 급하게 살아왔잖아.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그 말이 그날처럼 다정하게 들린 적이 없다.
그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느리게, 조금 단단하게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