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준 하루

by 김현아

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게 느렸다.

버스는 늦게 왔고,

커피는 평소보다 오래 걸려 나왔다.

일이 꼬이듯 흘러가던 하루였다.


예전 같으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오늘은 왜 이렇게 늦지?”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가을 햇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그 단순한 풍경이

괜히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 세상은 내가 급하지 않아도 흘러가는구나.’

그 단순한 깨달음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늘 서둘러야 한다고 믿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뒤처질 것 같았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보니,

그동안 놓쳤던 게 너무 많았다.


하늘의 색, 바람의 냄새,

그리고 내 마음의 소리까지.

빨리 가는 동안 나는

내가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속도를 늦추면

세상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의 표정이 보이고,

작은 친절이 눈에 들어온다.

삶이 조금은 다정해진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나는 노트를 펼쳤다.

그 위에 이렇게 썼다.

“오늘은 늦게 가서 다행이었다.”




천천히 간다고 해서 잃는 건 없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의 리듬’을 되찾는다.

누군가보다 늦더라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삶의 속도는 남이 정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정하는 것이라는 걸.




언젠가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너는 늘 급하게 살아왔잖아.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그 말이 그날처럼 다정하게 들린 적이 없다.


그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느리게, 조금 단단하게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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