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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Mar 31. 2024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27p

'디나이얼 지방출신'은 … 나의 동네가, 나의 고향이 매력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래서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 버린 사람들이다.

제주만큼의 바다와 태백산맥과 같은 숲, 123층 높이의 빌딩이나, 45만평쯤 되는 놀이공원 같은 것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소셜 미디어가 매긴 우리 도시 성적표> - 그러나 한편으로는 근사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오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콘텐츠를 점심 메뉴를. 고르듯 고민한다.


-> 나의 고향은 제주인데, 어렸을 때 내 고향에 대한 인식과 지금의 내 고향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서울로 전학왔던 나에게 친구들은 종종 시골사람! 이라며 놀리곤했고 당시에는 제주에서 왔다는게 조금 창피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나는 '디나이얼 지방출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가 지금은 '효리네 민박'으로 비롯된 요가, 차, 숲, 바다로 대표되는 힐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인스타그램에 각종 사진 찍기 좋은 명소들이 많이 올라오면서 '복잡한 도시로부터 떠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섬'으로 인식되는 듯 하다. 나이가 들면서 제주가 더 좋아진 영향도 있지만, 미디어에 의해 변한 제주의 이미지를 마음껏 누리며 당당하게 제주에서 왔다고 말하는 내 모습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됐다. 


54 그러니까 파리의 장소성과 뉴욕의 장소성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흔해졌다. 그 장소에서의 감정과 즐거움, 특이한 분위기와 정서는 그곳을 경험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장소성을 공유한다. 한 장소에 대한 엇비슷한 느낌과 생각과 사진들이 온라인에서 계속 생산된다.

60 여행안내서와 누군가의 블로그 감상문이 강요하는 느낌, 꼭 해야만 한다고 제안된 액티비티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을 확실하게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느끼지 못한다면 그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디선가 읽은 글을 떠올리지 말고, 내가 온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자.

88 대전의 어떤 것, 대전을 소비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어떤 것 하나만이 중요하다. 그 요소를 소비했다는 걸 증빙하며 다른 유저들과 같은 걸 경험했음을 전시하는 것, 그렇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요즘 여행의 방식인 것이다.


-> 한국인들만 그런건진 모르겠지만, 어느 나라/어느 지역에 여행을 가든 유난히 '(한국인)국룰'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여행 코스가 늘 존재했던 것 같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코스들이 유행하면 모두가 그 코스를 따라간다. 다른 선택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들 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했을 때 실패할까봐 두려워서일까 혹은 그 지역에 가면 남들이 한 건 다 해봐야 '나 그 지역 가봤다'고 말할 수 있어서일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에 노홍철 유튜브 채널에서 '이 여행이 내 인생에서 이 국가에 와보는 마지막일 것이기 때문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소소한 것들보다는 다들 가봐야한다고 외치는 곳을 도장깨기식으로 찍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교환학생 겸 첫 유럽여행을 갔을 때 내가 언제 여길 다시 오겠냐, 남들이 좋다는 건 빽빽한 스케쥴로 다 해보고 가야지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 내 머리를 띵하게 울렸던 한 선배의 말이 있었다. "그 지역 못 가도 괜찮아~ 어차피 유럽 다시 올건데 뭐." 이 기회가 마지막이 아닐거라는 것을 확신하는 마음가짐과 그로부터 나오는 여유가 그 선배를 더 현재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아보였고, 나도 그런 마인드로 여유롭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정말 다행히도 결국엔 그게 내 마지막 유럽 여행이 되지 않았고, 그 후에 한 번 더 유럽에 갈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00 정해진 아름다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진은 오래 바라볼 필요가 없다. 사진을 찍은 이유나 그 뒤에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다.

115 지역정체성은 사실 나와 내 주변의 이웃들이 일상을 매일 살면서 만들어 가는 중인 어떤 과정 혹은 삶 그 자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 그래서 지역성은 하나의 단어나 문구나 캐릭터로 압축될 수 없다.

116다 만들어진 상품을 사는 것처럼, 완성된 도시 정체성을 구입하는 일에 우린 너무 익숙하다. 잠시 그 상품이 마음에 들 수는 있어도, 그 상품은 진짜 내 것이 아니다. 기성품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스스로 살아 낸 도시의 삶이 모이면 어느새 풍성하고 거대한 도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 긴 시간과 자본이 있지 않으면 지역과 소통하며 정체성을 느끼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적어도 남들이 적어둔 가이드대로 감상대로 따라가는 여행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들이 아무리 낮은 별점을 주고 혹평을 써도, 그게 내 인생 여행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의 의견에 신경쓰지 말고 나만의 서사를 쌓아가는 여행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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