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책 추천
휴가 준비의 즐거움 중 하나는 휴가지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일이다. 이번 여름휴가는 더 신경 써서 책을 골랐다. 코로나 사번으로 입사한 지 4년 만에 떠나는 첫 장기휴가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늘 여행 위시리스트에 있던 발리를 휴가지로 골랐다. 도합 무려 10일이나 떠나는 제대로 된 여름휴가였기에 그에 맞는 완벽한 여름휴가 책을 골라가고 싶었고 고심 끝에 총 세 권의 책을 캐리어에 담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읽을 책,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넷플릭스 히트작 <굿 플레이스> 제작자 마이클 슈어가 쓴 철학 교양서인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비행기에서 읽을 책으로 골랐다. 휴가를 떠나기 직전까지 다양한 업무들에 휩쓸려 잔잔하게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에, 비행기에 꼼짝없이 갇힌(?) 김에 진득하게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인문책을 읽고 싶었다. 과학책과 철학책 중에 어떤 것을 가져갈지 끝까지 고민했지만, 상반기 내내 해온 고민과 이 책의 주제가 맞닿아있는 것 같아 결국 오랜만에 철학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내가 한 행동이 좋은 행동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한 책이었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공리주의 등 '윤리와 사상'과목을 고등학생 때 배운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다양한 철학 사상들을 "매우 재밌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모두가 익숙하게 들어봤을 트롤리 딜레마에서 시작해 "치즈 시식 1인당 1개라고 적혀있는데 3개 가져가도 될까?",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샌드위치를 계속 먹어도 될까?", "카트를 쓰고 제자리에 둬야 할까?"등 우리가 평소에 마주할 법한 질문들과 함께 쓰여 현실에 대입해 고민해 볼 수 있다. 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의 의견들을 들어볼 수 있는데, 마치 프로듀스 101을 보듯 '이 철학자 마음에 드는데? 아니야 이런 점은 별로다.. 역시 저 철학자가 최고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한 가지 관점에서 서술되는 책들을 주로 읽어 왔는데, 오랜만에 다양한 관점을 왔다 갔다 하며 읽는 시간을 가져서 리프레시되는 기분이었다. 지난 상반기엔 선택의 기로에 서있던 적이 꽤 있었는데, 나와 내 주변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리고 내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 고민해 보고 기준을 가지기 위해 철학서를 자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굿 플레이스>를 매우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굿 플레이스> 제작 일화들도 매우 흥미로워 철학 입문서로 적절할 것 같다.
수영장 썬베드에서 읽을 책,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자타공인 여름처돌이로서, '여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 영화, 드라마는 못 참는 편이다. 이 책의 선택 이유도 그랬다. 올해 초 김연수 작가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김연수 작가님의 신간 제목에 '여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가서 구매해 캐리어에 넣었다. 표지의 찰랑 거리는 물빛이 왠지 수영장을 연상시켜, 수영하고 썬베드에서 쉬면서 읽을 책으로 골랐다. 이 책을 발리에 가져간 것은 올 하반기(아직 한 달도 안 지남)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연말결산 때 2023 올해의 책으로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이 책은 김연수 작가님이 다양한 낭독회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저마다 슬프고, 희망차고, 절망적인, 다양한 여름을 보내는 단편들이 모여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맞닿아있는 면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다양한 인물들의 여름을 지나, 표제작인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다다르게 된다.
작가님이 제주도에서 낭독회를 하던 어느 날, 낭독회에 찾아온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인문학서를 읽는 독서모임의 회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들의 감귤과 배추, 당근과 같은 사람을 일으키게 하는 힘이 이 소설에는 있었다.
한 문장으로 함축될 수 없는, 인생 전반에 거쳐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 특히나 코로나19, 세월호 참사 등 한국 사회의 면면을 반영했기에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내가 상반기 내내 고민하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려준 작품이었다. 내가 내린 말과 행동에 대한 선택들을 계속해서 곱씹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 끝없는 시간에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어준 문장들이 이 책에 있었다. 나는 이 작품 덕분에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산책이" 있을 미래로 비로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정용준 작가님의 책 소설만세의, 내가 소설을 지키면 소설도 나를 지킨다던 구절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책의 신이 보우하사(?) 좋은 책에 잘 기대어 한 시절을 건너간다.
"우연을 '나'의 인생으로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우연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한다."
"잘못된 선택은 없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그러므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의지할 만한 것은 독서뿐이었다. 그럴 때면 늘 그랬듯이."
~이 책과 함께 하면 좋은 것들~
너무나 많은 여름이 playlist : both sides now - pat martino
팟캐스트 <요즘 소설 이야기> 119회, 120회 김연수 편
해변가에 누워서 읽을 책, <순도 100%의 휴식>
여름의 해변가에 누워서 쉴 때는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는 나만의 법칙이 있다. 시원하게 바다 수영을 한 뒤, 해변의 바닷소리, 습하고 짭짤한 바람, 뜨거운 모래와 함께 비치타올을 깔고 누우면 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완벽한 환경에서조차 핸드폰의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은 왠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강한 햇빛 때문에 핸드폰은 매우 뜨거워지며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아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발리의 남부 울루와뜨 해변에서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인 '사롱'을 구매해 모래 위에 깔고 누워 책을 보며 쉬었다. 해변에 잘 어울리는 책으로는 박상영 작가님의 신작 <순도 100%의 휴식>을 골랐다. 유쾌함이 보장되어 있는 작가의 휴식에 대한 에세이라니 실패할 일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박상영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의 소설을 완독 한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늘 시작만 하고 끝까지 읽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처음으로 깔깔대며 끝까지 읽었다. 늘 열심히 일하고 쉬지 못하는 그의 휴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재밌었던 건 그의 일하는 이야기였는데, 바로 2부 <가파도 롱 베케이션>이다. 박상영 작가님이 가파도에 위치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초대받아 가게 되면서, 섬에서 일하고 휴식하며 있었던 일들을 담아냈다. 이 파트를 더더욱 좋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앞서 읽은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쓴 김연수 작가님이 함께 가파도 레지던시에서 생활하시는 바람에 마치 연속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작은 섬에 몇 달 동안 묵으며 자신만의 작업을 하는 것은 나의 로망 중 하나인데, 글로 나마 그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섬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들, 네 명의 아티스트가 서로 도와가며 작은 점에서 생활하는 에피소드들, 가파도 주민들의 이야기가 생경하고도 익숙해서 즐겁게 읽었다. 아직도 책을 뒤적일 때면 울루와뜨 해변의 모래가 조금씩 떨어진다.
"가파도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자유와 휴식의 동의어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 이런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가파도를 떠나야 하지만, 때때로 숨이 막히게 힘든 일을 마주할 때마다 소란하고도 고독한 이 공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그들은 나처럼 사사로운 일에 붙들려 있지 않고 경제적으로 감정을 사용할 줄 아는 존재라는 생각에 때로 열등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김연수 작가님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을 자주 했는데, 작가님의 여유로운 걸음걸이며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 마음 씀씀이 같은 것들이 부럽고 좋았다. 일상의 대부분을 감정이라는 괴물을 다스리는 데 허비하는 나로서는 좀체 가닿기 힘든 삶의 형태이기도 했다."
"... 앞선 말들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다행이다' 시리즈를 읊어대는 통에 조하나는 어이가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서도 겨자씨만 한 행복이라도 찾아내는 것이 김종미와 m의 특기였다."
발리에서 산 책, <Educated(배움의 발견)>
여행지에서는 꼭 책을 한 권씩 사는 편이다. 진짜 읽기 위해, 그리고 그 여행지를 기념할만한 기념품으로써 책을 산다. 이번 여행에서는 <배움의 발견>을 구매했다. 주변에서 읽으라고 읽으라고 할 때는 안 읽고, 갑자기 발리에서 이 책을 사는 내 자신이 어이없지만 어쨌든 원서로 끝까지 읽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