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입에서, 무주산골영화제

대자연 속에서 즐기는 좋은 영화, 좋은 생각

by 위다혜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육관, 대강당 같은 장소들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그곳에서 상영한 영화들과 어울릴 때, 괜히 더 낭만적이라고 느껴졌다.

공식적인 여름의 시작, 6월 하면 생각나는 즐거운 연례행사가 있다. 전라북도의 작은 산골마을 무주에서 펼쳐지는 영화제인 "무주산골영화제"!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숲으로 떠나는 영화 소풍"이라는 소개말처럼 초여름의 대자연 속에서 영화와 공연, 책과 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번갈아가면서 즐길 수 있는 평화롭고도 충만한 영화제이다. 자연과 콘텐츠 둘 다 정말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내 취향을 다 가져다 둔 영화제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무주는 대중교통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영화제에서 서울 - 무주를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매년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많아져서인지 셔틀버스 경쟁률이 더 세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집 앞의 편한 영화관을 두고 굳이 산골마을로 낭만을 찾아 영화 보러 가는 사람들과 한 버스에 타 무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활기차다. 셔틀을 타러 가는 길, 배낭 하나 짊어지고 같은 방향을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혼자 "야 너두?"를 외치게 된다. 셔틀에서 내려, 영화제의 하이라이트 공간이자 주 무대가 되어주는 "등나무 운동장 입장권"팔찌를 차면 영화제가 시작된다. 등나무 운동장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으며 푸르른 잔디밭으로 입장했던 첫 순간 잊을 수 없다. 가장 강렬한 그리고 가장 독보적인 첫인상을 지니고 있는 영화제라는 생각이 든다.

촘촘한 간격의 나무로 이루어진 산이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고, 바닥은 초록 잔디로 가득하다. 도시와 다르게 온통 푸른 풍경뿐이다. 시원하게 뚫린 메인 스테이지, 그리고 알전구가 박힌 조그마한 천막 아래 사람들이 오밀조밀 둘러앉아있는 낭만스테이지. 이 모든 장소들을 크게 둘러싸고 있는 등나무 그늘이 그 시그니처다. 이 등나무 운동장은 정기용 건축가 진행한 무주 프로젝트의 하나였다고 한다. 햇볕이 너무 강해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던 운동장에 심어진 등나무를 보고, 이를 활용해 등나무 그늘을 만들어 주민들이 시원하게 쉬어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인공적인 그늘이 아닌 등나무를 활용해 자연과 함께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등나무 운동장에서 이루어진 영화제여서 그런지, 더욱더 사람들에게 휴식과 기쁨을 주는 영화제처럼 느껴졌다.

진심으로 영화 보기만을 목적으로 영화제에 가는 나는 종종 컴컴한 영화관에 들어가느라 이 무주의 대자연을 놓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까울 때가 있다. 하지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영화와 gv, 토킹시네마, 산골책방 등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재밌어 보여서 늘 포기할 수 없다. 전주, 부천, 부산에 비해 무주산골영화제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보다는 대중적이거나 평단의 검증을 한 번 거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영화를 즐기고 가는 듯하다.

올해 2023년에는 영화 <어느 멋진 아침>과 미아 한센 러브의 영화세계를 다룬 토킹시네마,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과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세계를 다룬 무비건조 팀의 토킹시네마, 다음소희 gv, 우리는 왜 영화잡지를 만드는 가에 대한 산골책방 토크가 인상 깊었다.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닌 해당 감독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가 구축하려는 세계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 행복했다.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조합의 영화계 사람들이나 이미 상영이 종료되어 만날 기회가 없는 감독, 배우들의 조합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보지 않았을 수도 있는 작품을 볼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이 영화제의 묘미다. 그리고 시놉시스만 보고 선택한 그 영화가 좋았을 때 느껴지는 큰 행복은 영화제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주산골영화제의 핵심이자 그 진가를 보여주는 자연 속 야외 상영! 등나무 운동장에서 새벽까지 다 함께 보는 영화, 무성영화에 맞춰 악기들을 연주하는 라이브 공연, 그리고 무주 덕유산 중턱에서 밤새 연달아 볼 수 있는 영화들까지. 최대한 야외의 공기를 즐겨야 하는 계절인 6월의 영화제답게, 그 계절과 자연을 있는 힘껏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세션을 선보인다. 특히, 덕유산에서 6월 새벽이슬과 함께 덜덜 떨며 보는 야외 영화가 무주의 가장 하이라이트 행사이다. 낮에는 반팔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돌아다니지만, 밤에는 롱패딩에 목도리를 하고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그야말로 사계절의 자연을 모두 느끼는 영화제다. 사랑의 시작은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행동을 할 때부터라던데, 굳이 이 계절에 산 중턱까지 와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보면 사랑이 가득 느껴진다.

라이브 공연의 라인업도 어느 페스티벌 못지않게 훌륭해서, 공연만 보러 오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작년에는 서랍, 당시 미발매곡이었던 그라이데이션을 불러줬던 10cm와 쨍한 햇살 아래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 윤석철 트리오, 그리고 비 오는 오후 잔잔하고 포근한 목소리와 기타 소리를 들려준 예빛의 음악들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올해는 전진희, 박지우, 적재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에 비해 무주라는 지역을 정말 잘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수련관, 예체문화관 등 주민들의 공간을 영화제 장소로 활용한 점이 돋보였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육관이나 대강당 같은 공간들이 그곳에서 상영한 영화와 잘 어울릴 때 그 낭만은 더 커진다. 빛을 가릴 수 있고 사람들이 앉을 곳만 있다면 그게 어디든 영화관이 될 수 있구나 느낀다.

푸드 코트에서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가 아닌 무주 동네 음식점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셔 만들어주시는 음식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 놀랐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일회용품 줄이기도 실천하는 모습도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나에겐 감동의 포인트 중 하나였다. 축제에 오면 늘 커피, 맥주, 음식을 사느라 일회용품을 엄청나게 쓰게 된다. 올해는 텀블러를 챙겨 왔지만 다회용기는 못 챙겨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트래쉬 버스터즈와 협업하여 음료, 음식을 다회용기에 담아주고 다 먹으면 반납할 수 있도록해서 너무 좋았다! 자연을 주 무대로 하는 만큼 환경에 신경을 쓰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주는 매우 작은 마을이고 어딘가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영화제 내부 셔틀을 운영한다. 나와 친구들은 이 셔틀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산 중턱 어느 리조트에서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가 들리고 바로 앞엔 계곡과 산이 보이는 곳이었다. 친구들이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나 혼자 조조영화 <어느 멋진 아침>을 보러 가던 무주의 아침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푸르른 숲을 보며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내려가, 차분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삶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다루는 영화를 본 그 아침은 영화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관을 나서도 이어지는 영화 같은 무주의 청명한 아름다움 그리고 좋은 영화덕에 만나게된 낯선 세계과 새로운 생각들 덕에 영화에 대한 사랑을 더 키워올 수 있었던 그야말로 "영화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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