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을 기다리는 여름 처돌이의 이유들
세 달 정도의 짧은 여름이 끝나면, 다른 계절에 할 일은 늘 여름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사계절 각각의 매력이 물론 존재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대체로 여름과 비여름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름 언제 오지?라는 생각을 달고 사는 나에게, 드디어 여름이 왔다! 여름에 대한 글들을 쓰기에 앞서, 내가 왜 여름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들을 정리해 본다.
1. 쨍쨍한 햇빛
가장 본능적으로 와닿는 여름의 매력은 따뜻한 온도가 아닐까. 뼈 시리게 추운 겨울,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서늘하고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봄과 가을과 달리 여름은 늘 따뜻하다. 추위에 약한 나에게 이 사실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외출의 장벽을 낮춘다. 바깥이 조금이라도 서늘하면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게 되지만 여름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 핑계도 댈 수 없게 만든다. 날이 따뜻하니 밖으로 나갈 때 옷 입을 채비를 덜 해도 되므로 준비 시간도 적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뜻하게 산책을 시작할 수 있다. 때문에 여름엔 걷는 시간, 밖을 돌아다니는 시간, 햇빛을 받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지게 된다. 과학적으로 많이 걷고, 햇빛을 많이 쐬면 건강도 좋아지고 기분도 좋아진다던데 아마 이런 환경을 가지고 있는 여름을 좋아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일인지도 모른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듯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약간의 구릿빛으로 구워지는, 여름의 흔적이 남는 시간들이 좋다. 지금까지 추위로 꽁꽁 얼어있던 몸이 드디어 해동되는 느낌이 든다.
2. 뜨거움을 식히러 바다로 가자
한여름이 되면 따뜻을 넘어 탈 듯 뜨거운 온도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물놀이이다. 뜨겁게 달궈진 삶은 달걀을 식히기 위해 찬 물속에 담그듯, 뜨거워져 팔팔 끓어버릴 것 같은 몸을 차가운 물속에 담근다. 여름의 뜨거운 날씨를 핑계로 말이다. 실내 수영장에서의 수영이나, 추운 날의 수영보다, 뜨거운 온도의 날씨에 더위를 완화시켜 주는 야외 바다 수영이 훨씬 즐겁다. 매번 올해는 바다를 자주 가야지 다짐하지만 일상의 방해물들에 치여 실패한다. 올해야말로 바다를 잘 즐기는 여름을 보내보고자 한다!
3. 여름의 맛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도 제철채소, 제철과일들을 부지런히 챙겨 먹으려는 편이지만 눈과 입이 가장 즐거운 계절은 여름이다. 뜨거운 햇빛과 시원한 비로 많은 열매들이 열리는 계절이어서 그런지, 생생한 제철의 먹을거리들이 넘쳐난다. 여름 제철 요리는 이르면 늦은 5월부터 시작된다. 초여름의 완두콩과 오이를 올린 샌드위치, 그리고 참외 샐러드로 시작해 공식적인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6월이 되면 슬슬 매주 여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반가운 식재료들이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다.
내가 특히나 반가워하는 얼굴들은 자두, 복숭아, 옥수수, 홍감자, 토마토, 그리고 아오리사과! 이번 6월은 작년에 선배가 생일선물로 담가준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똑같이 따라 만들어보았다. 매실과 토마토, 바질의 상큼하고 시원한 맛으로 시작되는 올여름의 다양한 레시피들이 기대된다.
4. 사랑에 빠질지도 몰라, 여름밤
이 세상의 모든 계절과 모든 시간들 중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단연 여름과 밤의 조합, 여름밤이다! 이렇게 낭만적이고 사랑에 빠지기 쉬운 시간이 있을까. 보통 밤의 시간은 고요하고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때가 꽤 있다. 그러나 여름의 밤은 다르다. 세상의 많은 밤들 중 이렇게 생동감 있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밤이 있을까. 7~8월에는 한낮의 기온이 지나치게 높을 때가 많으므로, 평소의 활동들을 조금 더 시원한 밤 시간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진다. 평소 같으면 집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이불 속에 들어가 있을 시간대이지만 여름만큼은 밤에 강아지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밤에 생동감이 더 높아지는 이유다. 낮에 비해 시원하다고 해도 여전히 온도는 따뜻하기에, 한강에 앉아 맥주 한 캔을 할 수도 있고 밤바다를 구경할 수도 있다. 따뜻한 온도, 적당한 술기운, 반짝이는 풍경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5. 채도가 높아진 세상의 풍경
겨울을 싫어한 이유는 정말 많지만, 그중 하나는 황량한 풍경이다. 어쩐지 바라보기만 해도 쓸쓸해지는 겨울의 풍경. 눈이라도 오면 좋을 텐데 눈마저 없다면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풍경에 왠지 더 우울해진다. 물론 지구의 다양한 생명들에게는 이렇게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여름의 풍성하고 채도가 한 단계 높아진 풍경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나무들과 그 나무에 맺힌 색색깔의 꽃들!
특히 여름의 꽃인 수국과 능소화를 사랑한다. 올망졸망 작은 꽃들이 모여 마치 푸들처럼 보이기도 하는 수국은, 토양의 성분에 따라 꽃잎이 정말 다양한 색을 가진다. 다양한 색의 수국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하늘색, 보라색의 수국! 평소에 흔하게 보이는 색의 꽃이 아니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있고 여름의 청량함과도 잘 어울려서 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수국은 도시에서 자주 찾아보기 힘들지만 능소화는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붉은 벽돌의 담과 정말 잘 어울리는 능소화, 그 담을 따라 아래로 풍성하게 피어나며 내려오고 있는 능소화는 서울의 빌딩숲을 걸어 다니다가 발견하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여름의 행운 중 하나다.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다 능소화를 발견하면 "엇! 능소화다!"라고 외치고 사진을 찍는 것이 여러 낙 중 하나.
6. 장마는 장마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여름의 싫은 점을 굳이 꼽자면 장마다. 내내 습하고 불편하다. 비가 내리는 날의 불쾌함과 불편함을 좋아하지 않지만, 비 오는 날 중 골라보라면 그래도 여름날의 비가 제일 참을만하다. 다른 계절의 비는 내리고 난 뒤 더 추워진 기온을 동반하지만, 여름에는 비가 와도 시원해질 뿐이다. 오히려 좋아! 심지어 뜨거웠던 온도에 데워진 것인지 여름날의 비는 온전히 맞아보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비가 내리고 난 후의 촉촉한 풀과 나무의 내음,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보는 청량한 재미도 있다. 그리고 여름에는 왠지 무서운 스릴러, 탐정 소설, 공포 콘텐츠가 당기는데, 비 오고 천둥번개 치는 날은 에어컨을 틀고 집에서 으스스한 콘텐츠들을 즐기기 딱 좋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비가 지나치게 와서 많은 피해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장마는 장마 나름대로의 즐거운 여름의 시간을 선사한다.
여름이 좋은 수많은 이유를 정리하면 이 정도로 요약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모든 이유들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여름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름이 청춘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계절이어서가 아닐까.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책에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 계절을 여름으로 설정하거나 제목에 여름을 넣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1년이라는 긴 시간 중 가장 생동하고, 선명하고, 따뜻하며, 사랑이 넘치는 계절! 여름의 이런 면모들은 청춘이라고 불리는 모습들과 닮아있다. 올 여름엔 청춘의 시간처럼 빛나고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