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던 그날
며칠 전까지 나를 불렀던 새언니가 떠났다
나는 오빠가 하나뿐이다.
우리 두 남매가 형제의 전부였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우리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꽤 많이 받으며 자랐다.
사랑은 충분했지만, 엄마 아빠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엄마는 자주 집을 나갔고, 아빠는 술을 많이 드셨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오빠와 나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
나름 착하게, 조용하게 잘 컸다.
오빠는 나에게 엄마이자 아빠의 자리를 대신해 준 사람이었다.
세 살 터울이었지만, 나는 늘 오빠에게 의지했다.
때로는 철없는 행동으로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하나뿐인 오빠였다.
그런 오빠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결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빠의 선택이고, 그의 삶이니
동생인 내가 뭐라 할 자격은 없었다.
오빠는 신혼집을 타 지역에 얻었다.
거기서 직장 생활을 하며 신혼을 시작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셋이서 오빠네 신혼집에도 갔던 것 같은데
기차였는지 차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신혼집의 모습도, 분위기도
이렇게 글을 쓰며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갔던 건 확실한데 말이다.
상견례, 결혼식, 집들이.
그 외에는 새언니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시절에는 컴퓨터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던 때였다.
가끔 새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친하지 않았고, 대화는 늘 어색했다.
예의 바른 인사만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날도 회사에 있던 나에게 새언니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 바빠요?”
나는 바쁘지 않았지만
어색하고 귀찮아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곧장 고향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새언니가?
그 멀쩡하던 새언니가?
며칠 전만 해도 나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던 그 언니가?
도대체 왜.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오빠와 새언니의 친정식구들만 있었다.
사돈어르신은 오빠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고
오빠는 그저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속상하고 안쓰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새언니의 죽음이 어떤 이야기였는지,
그 슬픔이 어떤 파도처럼 우리 가족에게 밀려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