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송이 Sep 27. 2020

약물치료는 처음이라서

(feat. 렉사프로)

공황장애. 한때는 나도 유명인들이나 앓는 '연예인병'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찔려 앓는 증상, 연예인들이 자신의 심경을 고백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대화 소재 정도로만 여길 때가 있었다.


연예인 공황장애, 우울증 구글링 검색 결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올해 7월, 정신과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도,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찔릴 일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인 나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그것이 내 삶에 찾아온 배경과 내 일상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내 몸과 마음에 나타난 새로운 증상을 겪고 이를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그렇게 호들갑 떨만한 대단한 무엇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얘기해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시작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월의 어느 새벽, 나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에게 아주 큰 상처를 받았다.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날린 강펀치는 내 마음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그 구성원은 몇 달 후(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 해외로 출국했고, 나는 그 빈자리를 보며 잠시 숨을 돌렸다. 문제는 그가 귀국하기로 예정된 올해 6월 말쯤부터 시작됐다.  


6월 중순쯤 퇴근 후 신경외과를 찾았다. 그즈음 쥐가 나는 것처럼 왼쪽 다리에 피가 전혀 안 통했다가 한참 후에야 다시 감각이 돌아오는 증상이 반복됐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X-ray를 찍었지만 내 다리는 멀쩡했고 스트레스의 문제라는 뻔한 대답을 듣고 혈액순환을 돕는 약을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스트레스의 문제'가 뭘까 생각에 잠겼다.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가끔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아주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잠시 후 6월 말 그의 입국일에 생각의 끝이 닿았다. 설마 이것 때문인가. 당황스러웠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그의 입국 후에 자연스럽게 증명됐다.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의 재등장에 내 몸과 마음은 한껏 움츠러들고 내내 긴장했다. 집에서 나는 온갖 소리에 예민해져 이어 플러그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고 샤워할 때조차 이어폰을 꼈다. 예상치 못한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면 손을 덜덜 떨었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재빠르게 샜다. 회사 동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과 장난이 뒤섞인 표정으로 "요즘 왜 이렇게 영혼이 없어요?ㅋㅋ"라는 말을 던졌고 나는 점점 말과 표정을 잃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은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회사 근처 병원을 찾은 것은 7월 말.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2주째였던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방 안을 둘러보다가 '이 안에서 죽는다면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옷걸이와 문고리, 창틀을 잠깐씩 둘러봤다는 얘기를 꺼내자 선생님의 눈썹이 한껏 일그러졌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선생님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방금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한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어쩌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약물치료를 권유했다. 순간 망설였다. 그 정도인가? 약 먹는 건 어쩐지 좀 그런데... 하지만 이대로 더 가면 진짜 우울증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나 약을 먹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렉사프로 5mg이 담긴 약봉지를 받아 들었다.

 

요새는 생각을 줄여주는 약(초록색)을 함께 먹고 있다.


렉사프로는 약 복용 초기에는 몇 가지 부작용이 있었는데(물론 사람마다 발현 증상은 다르다!), 나는 약간의 어지러움증과 메스꺼움을 겪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도 주정뱅이로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약을 먹어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니.'라는 생각이 나를 가장 많이, 오래 괴롭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 편도행 티켓만 끊고 아주 긴 여행길에 오른 것만 같은 막막한 기분이었다.


이 약의 효과는 몇 달을 꾸준히 먹어야 발현된다. 렉사프로와 함께한 지 3달째가 되어가는 요즘은 어머니가 용한 한의원에서 다려온 한약을 챙겨 먹듯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약을 먹는다. 그만큼 나는 많이 나아졌다. 갑자기 손을 떨거나 과호흡을 겪던 일이 줄어들었고, 이어 플러그 없이 씻고 잠든다. 이 작은 알약 하나가 내 몸과 마음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요새는 생각을 줄여주는 약(초록색)을 함께 먹고 있다.


꾸준히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면서 언젠가는 이 긴 여행길의 종착지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요즘엔 며칠을 친구 집에서 머물며 아무 걱정 없이 웃고 떠들기도 하고, 나의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약통을 꺼내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크고 작은 상처에 예민한 몸과 마음이지만 예전만큼 내가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 연예인들이나 겪는다는 거, 나도 한번 해보자. 이런 어이없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약물치료는 내게 타인의 무심한 찰나에도 홀로 오랫동안 앓는 나를 지켜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나약하거나 결함이 있어서 아픈 게 아니라는 이해, 그리고 내게는 이 아픔을 아물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믿음을 꼭 쥐고 오늘 하루도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다시 살게 했던 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