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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pr 16. 2020

첫 요리는 강릉에서 오징어 찌개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12

중2때, 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강릉으로 이사갔다. 태어난 서울을 떠나 처음 지방으로 이사 가서, 자연, 도시, 집, 사람 등 좋은 경험을 참 많이 했지만,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경험도 흥미로웠다. 


주말이면 가족끼리, 혹은 다른 가족이나 방문한 친척들과 막국수, 초당 순두부 등을 먹으러 도시 근교의 시골집으로 다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주문진 수산 시장에 가서 싱싱하고 저렴한 해산물을 잔뜩 사왔다. 


특히 대게를 사와서 찐 다음 식탁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정신없이 까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은 한국산 대게가 씨가 말라 대부분 러시아에서 수입하지만 그때는 동해에서도 많이 잡혔고 값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아직 강릉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이라 서울에선 비쌌지만 말이다. 


섬 출신이라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던 엄마였지만, 서울에서는 가격도 그렇고 신선도도 그래서 그다지 해산물 요리를 즐기지 않았다. 강릉에서 보낸 그 1년만큼 우리 가족이 해산물을 맘껏 풍성하게 먹고 지낸 적은 이후로도 없었다. 시대가 지나 운송 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바닷가의 식탁을 서울이 따라갈 순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우리 강릉집의 냉장고는 늘 해산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주말 엄마와 아빠가 외출하고 나랑 동생이랑 할머니가 점심을 적당히 해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엄마가 해논 반찬을 적당히 차려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거나 해야 했지만, 그때 나는 강릉의 풍족한 식생활에 한껏 필을 받은 상황이었나 보다. 


중2밖에 안 되었고, 학교에서 가사 실습 때 한두 번 요리를 해본 게 다였을 텐데, 내가 점심을 요리하겠다고 나섰다. 할머니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러라고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오징어가 눈에 띄었다. 냉동이 아니고 죽은 지도 얼마 안 된 싱싱한 생물이었다. 가끔 먹던 오징어 찌개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할머니에게 요리법을 물어보았다. 일단 오징어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했다. 해산물도 좋아하지만 재료를 알뜰히 쓰는 엄마는 껍질을 안 벗기고 요리를 했던 것 같은데, 일단 깔끔한 할머니의 방식을 따라서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우선 개수대에서 물을 틀고 오징어를 씻으며 껍질을 칼로 박박 문질러서 떼어냈다. 난생 처음 손질해보는 해산물은 너무 미끈미끈 끈적끈적 한데다 뭔가 냄새도 나는 것 같아서 찝찝했다. 계속 물로 씻으며 껍질을 한 점 남김 없이 벗겨냈다. 그리고 무우도 썰고 한 다음 고추장을 푼 물에 삶았다.


완성된 오징어찌개를 먹어보니 오징어 특유의 비릿한 맛뿐 아니라 감칠맛도 완전히 사라진, 짜고 맵기만 한 맹탕 찌개가 돼 있었다. 동생과 내가 “앗, 맛이 왜 이래?” 하면서 실망하자 할머니는 너무 박박 문질러 씻어서 “맛이 다 달아났다”면서, 다음부터는 껍질만 살살 벗기고 조금만 씻으라고 말했다. 


내가 중3으로 올라가며 여행과도 같았던 강릉 살이는 끝났다. 아버지는 기러기가 되었고 엄마와 나와 동생은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 서울의 미세먼지가 심하다며 마스크를 쓰고 난리지만, 생각해보면 80년대의 서울이 더 심했던 것 같다. 맑은 강릉의 공기를 마시며 살다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차 안으로 스며드는 매캐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던 기억이 난다. 블라우스 칼라는 매일 새까매져서 매일 빨아입어야 했고 말이다.


성인이 된 후의 나는 오징어 찌개 같은 번거로운 음식은 하지 않는다. 냉동 오징어를 사게 되면 가위로 적당히 자른 다음 알루미늄 호일에 놓고 미니 오븐에 잠깐 굽기만 하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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