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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ug 05. 2020

신입생의 갈비집과 소주

술과 파티의 나날 4

처음 제대로 술을 마셔본 건 아무래도 대학에 들어가서다. 정확히는 입학 전 예비 소집일 날이었던 것 같다. 수강 신청 등 공식 일정이 끝나고, 수선스레 환영 인사를 건네는 선배들과 함께 수십 명이 줄을 지어 학교를 나갔다. 공식 환영회는 다시 하겠지만 ‘뒤풀이’라는 걸 다 같이 가자고 했다. 어렵사리 줄을 유지하며 대로를 건너고 좁은 보도를 지나 굴다리를 넘어서니 유흥가가 나왔다.

입학 전에 그 대학교를 몇 번 드나들면서, 학교 앞에 상업 시설 하나 없고 참 깨끗하다고, 진정한 학문의 전당인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 소녀였다. 굴다리를 지나가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흥가가 나왔다. 메인 도로 양쪽으로 격자형 골목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건물마다 단 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빽빽히 술집이 들어차 있었다. 지금은 서울 시내 유흥가들이 많이 한산해졌고 빈 가게도 많아졌지만 그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날 학과 선배들이 예비 신입생인 우리를 데려간 곳은 ‘00갈비’라는 간판이 걸린, 이른바 ‘갈비집’이었다. 갈비집은 원래 고기 중에서도 제일 비싼 ‘갈비’를 먹는 곳이고 실은 그냥 싼 고기라도 먹는 곳을 지칭했지만, 그때 우리는 갈비집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그때뿐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했던 게, 그후로도 계속, 학과 내 공식 행사 때마다 우리는 항상, 늘, 언제나 XX갈비, $$갈비 하는 상호들에서 모여 4인용 냄비에 담긴 김치찌개 혹은 부대찌개를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눠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고기를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냥 ‘김치찌개집’ ‘부대찌개집’에서 파티를 개최하지 않았던 걸까? 상호에서라도 고기 분위기를 느껴야 했던 걸까?

어쨌든 그런 때 우리는 ‘00갈비’를 통째로 빌릴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잔뜩 긴장한 신입생들과 어색하지 않은 척하느라 무진 애쓰는 선배들, 생소한 어휘들로 이루어진 학생회 소개와 툭하면 불러대는, 난생 처음 듣는 운동권 투쟁가들. 예비 신입생들은 다들 소주 잔을 앞에 놓고 멍하니 얼어붙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학 신입생 때 처음 막걸리를 (지나치게) 먹고 나서 막걸리가 싫어졌다는 사람도 많지만, 그때 우리 대학, 우리 과에서는 거의 소주를 먹였다. 그래서 내가 지금도 소주를 좋아하지 않나보다. 그래도 첫날이라 그런지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나는 소주를 한 입 정도 맛만 보고서 얼굴을 잔뜩 굳히고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서둘러 빠져나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날 결국 마구 소주를 받아 마시고 업혀가서는 단체로 여관에서 잔, 외박을 한 동기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예 선배들을 따라 갈비집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 동기들도 꽤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내가 정식으로 술을 마셨다고 하기엔, 마신 양이 너무 적었다. 고3 크리스마스 이브 때 마셨던 포도주의 양보다도 적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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