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아내와 첫 만남
모든 것이 생소했고, 불안했다. 마치 누군가 나서서 일부러 방해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속상했다. 그날도 열심히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하다가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시 얻기 힘든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아니 오히려 아주 본능적이고 정직한 반응이었을 거다.
사실 이름이나 들어봤지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몰랐고, 언어는 물론이고, 내가 그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어릴 적 월드컵 예선에서 5:0으로 이겼다는 것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게 전부였다. 여차저차 일을 하러 가기로 했지만 출국날을 겨우 2주 남기고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고, 부랴부랴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목발을 짚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못 가게 되었다고 말을 할까도 밤새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생소한 나라 자체에 대한 불안요소도 전혀 해소하지 못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멀쩡한 몸뚱이마저 고장이 났기에 포기를 해야겠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러한 상황에서도 카자흐스탄이라는 미지의 나라로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안도 부상도 아니었다.
얼마 전 최종적으로 합격통보를 받은 후 들뜬 맘과 불안한 맘을 동시에 해소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를 수집해도 생생한 현지의 정보가 고팠다. 그래서 나는 어플을 이용해서 카자흐스탄의 생생한 현지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들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힘든 타국 생활에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오랫동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아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평소에도 ‘인연의 깊이는 함께한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 한 명이라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국적을 떠나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진심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렇다면 나는 힘든 타국 생활을 버틸 힘이 하나 더 생기겠지...
우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리고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했던 어플에 등록된 카자흐스탄 사람은 겨우 2명뿐이었다. 한국어와 영어에 관심이 있는 두 명뿐이라 그중 한 명이라도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용기를 내 메시지를 보냈고, 다행히도 두 명 모두에게 대답이 왔다. 나는 먼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대화 주제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말을 걸었고, 한국어를 써주는 그들을 위해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나는 메시지 하나하나를 손편지 쓰듯 정성을 담아 보냈다. 그 마음을 알아봐 주었는지 아니면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나에게 정성을 쏟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정성이 담긴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처음 시작했던 두 명중 한 명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나의 정성을 알아봐 준 한 명의 그녀와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술 후 병원 침대에 누워 그녀와 대화를 하며 나는 결심했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몸이 따라주지 않아 설령 금방 돌아오게 되더라도 대화가 통하는 그 ‘친구’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미 불안과 부상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주 동안이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구와 그렇게 속 편하게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서도 지금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카자흐스탄으로 반드시 가기로 결심했다.
10월 중순. 낙엽이 날리는 가을에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만에 눈 내리는 겨울로 착륙했다. 무릎에 커다란 쇳덩어리를 감싸고 6시간의 비행을 견뎠다. 그리고 쌓인 눈 위로 목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도착한 카자흐스탄은 왠지 낯설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낯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아마도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겠지.
로밍을 해온 핸드폰을 켜고 부모님께 걱정 말라며 연락을 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답장을 하지 못할걸 알면서도 잘 도착했냐고 먼저 물어온 그녀의 메시지에 답장을 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찾는 건 본능인지 이성적인 감정이 없었어도 비행기를 탈 때부터 계속 그녀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랬기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만났다. 이미 오래된 친구처럼 만나자마자 카자흐스탄에 대한 첫인상을 조잘조잘 얘기했고, 그녀는 웃으며 모든 말을 들어주었다. 길도 모르는 날 대신해 멀리까지 찾아와 준 그녀의 배려에 나 역시 면세점에서 세심하게 고른 작은 선물을 건네며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얘기했다.
생소한 나라인 카자흐스탄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 다리를 다치고도 포기하지 않은 것, 어플에서 만난 사람과 아무 편견 없이 많은 대화를 한 것. 이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운이 좋았고, 한편으론 운이 나빴다.
우연의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 후에 생긴 우연들은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운명처럼 시작된 특별한 인연이라 포장하고 싶지만 진짜 운명 같은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노력,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을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상대를 생각하며 고른 작은 선물. 이런 작지만 진심이 담긴 배려들이 모여 운명 같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이 때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연인이 되고, 나아가 부부의 인연까지 맺게 될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첫 만남때처럼 서로에게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아름다웠던 시작과 비교할 수 있는 끝맺음을 위해 평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