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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언니 백예진 May 07. 2024

엄마, 우리도 언젠가 저런 고급 빌라에 살 수 있을까?



조류 독감 파동과 연이어 들이닥친 홍수, 폭설 등으로 가계가 기울어 서울로 떠나온 후 우리 집의 히어로는 엄마였다. 가사 노동을 전담하며 전업 주부로만 사셨던 엄마는 본인에게도 충분히 어렵고 도전적인 상황이었을 텐데도 담담하고 씩씩하게 집 밖의 사회로 나갔다. 흥미로운 점은 엄마가 시작한 일이 마트 캐셔라든가 파출부처럼 단순 노동이나 가사 노동에 바탕한 게 아니라 뭐든 ‘새로 배울 것이 있는 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일하며 가게 운영의 매뉴얼을 배우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어 부동산 학원을 다니며 수업을 듣고, 결국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셨다.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며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뀌어 가던 내게 엄마의 모습은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저렇게 긍정적이고 강인할 수 있는지, 엄마의 에너지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노력과는 별개로 우리 집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탈탈 털어도 차비가 없는 날은 긴긴 등하교 길을 걸어서 다녀야 했고, 학교에 급식비를 제때 못 낸 날도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집에 쌀이 아예 없어 굶을 뻔한 날도 종종 있었다. 어느 날은 학교에 있는데 문득 과일이 너무 먹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과일을 먹어 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뭔가 갑자기 서글퍼서 괜히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마음에 다른 내용 없이 생각나는 대로 과일 이름만 줄줄이 적은 문자를 엄마에게 보냈다. 포도, 오렌지, 수박, 딸기, 파인애플, 사과… 그러고 나서는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마저 잊고 남은 하루를 지냈다. 



학교를 마친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내 눈에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엄마가 과일을 깎고 있었다. 포도, 오렌지, 수박… 아차, 싶었다. 내가 낮에 문자로 보낸 과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장난으로 보낸 건데 진짜 다 사 오면 어떻게 해!
근데 너무 맛있겠다~ 



와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일부러 크고 명랑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너희들 먹이고 싶어 다 사 왔지,라며 씩 웃으시는 엄마를 보자 좋은 건지 슬픈 건지 대체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집안 형편을 빤히 알면서 과일을 먹고 싶다는 어리광이나 피운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엄마는 대체 어디서 돈이 나서 이 과일들을 사 왔을까 싶어 한없이 미안해졌다. 눈물 때문에 후각이 마비돼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과일을 우걱우걱 씹으며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새삼스럽게 실감한 밤이었다. 



하루는 컴컴해지도록 독서실에서 공부한 밤이었다. 낮엔 포근하고 밤에는 적절히 선선한, 딱 요즘 같은 날씨였다. 독서실로 마중 나온 엄마와 손을 잡고 산책하듯 집으로 가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큰 빌라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돌이켜보면 대단히 고급스러운 빌라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우리 집에 비해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깨끗한 대저택처럼 보였다. 그 집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우리도 언젠가 저런 고급 빌라에 살 수 있을까?” 

엄마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엄~! 우리도 살 수 있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이 커진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환한 얼굴로,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네 가족이 힘을 합하면 당연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멀진 않을 거야.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예진아. 그렇지?
그날이 오면 가구도 집에 어울리는 걸로 싹 새로 사자.
예진이 방은 예쁜 공주님 방처럼 꾸며줄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야.”


아무 생각 없는 혼잣말을 툭 내뱉은 나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나보다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진심을 다해 용기를 북돋아 준 엄마의 그 말은 내게 크나큰 에너지가 되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내심 단정 짓고 있던 내 비관적인 태도를 완전히 바꿔 주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며 다짐했다. 누구보다 멋진 디자이너로 성공해서 엄마와 아빠, 동생을 호강시켜 주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살 집을 꼭, 내 손으로 직접 짓겠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주는 힘과 사랑을 공간에 투영해서 전파하겠다고.  



가족이 주는 힘과 사랑은 오늘날 더 코나가 주거 공간, 특히 가족의 공용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이다. 그 공간이 주방이든 거실이든 욕실이든 중정이든 다락이든, 테라스이든은 중요치 않다. 기능과 구색 맞추기를 넘어 그 공간을 어찌 구조하고 무얼 들여놓아야 가족들이 머무는 동안 더 끈끈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수없이 고민하며 설계한다. 나 자신을 클라이언트 가족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입해 가며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약간의 오지랖이 첨가된 일종의 사명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이 깃든 공간의 힘이 마침내 실제로 발휘되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일례로 몇 년 전 신당동의 낡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클라이언트는 중년 부부와 중고등학생 딸들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는데, 집이 낡고 불편하다 보니 주말에도 집에 있지 않고 각자 밖에 나가 따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며 온 가족이 함께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집을 의뢰했다. 나는 지난날 독서실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집에 가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 자신을 클라이언트의 딸들에 대입해 가며 작업했다. 혼자이거나 또래와 노는 것이 한창 좋을 청소년 딸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어울리며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집이란 어떤 모습일지, 또 반대로 엄마 아빠가 청소년 딸들이 독립하기 전에 함께 추억을 쌓고 싶은 집이란 어떤 모습일지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어린 날 내가 짓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집을 그곳에 투영해 스케치하고 구현했다. 그렇게 공들였던 설계와 시공이 끝나고도 몇 달이 더 흐른 뒤, 클라이언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집안일이라곤 전혀 손대지 않던 남편이 이젠 침실이 호텔 같아 너무 좋다며 매일 아침 이부자리를 탈탈 털어서 깨끗하게 정돈해요. 딸들도 이젠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돼서, 온 가족이 주말마다 요리를 함께하고 브런치를 먹어요.
리모델링이 집의 외관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까지 리모델링해 준 것 같아요!


이처럼 공간의 힘은 엄청나다. 갈수록 팽배해지는 개인주의로 가족 간 관계마저도 식은 죽 먹듯 쉽게 단절되는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나는 공간이 여전히 소통과 교류, 그리고 어울림과 활력을 만들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고 믿는다. 그리고 늘 바란다. 그 생명력을 믿고 최대한 끌어내어서,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간들을 언제까지고 오래 만들고 싶다고.



평창동 주택 건축 프로젝트 소우주의 세컨드 리빙룸 역할을 하는 실내 테라스. 이 공간에서 가족들은 함께 불멍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클라이언트 가족의 주말 별장 건축 프로젝트였던 남양주 풀하우스. 구성원들이 저마다 휴식을 즐기면서도 통창을 통해 서로 시간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다.
고성 청간리의 네이처 하우스 프로젝트에서는 다락을 개조해 가족들이 영화나 영상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홈시네마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리빙센스에 수록된 컷들 중 일부. 
고성 청간리 네이쳐 하우스의 1층 거실. 더 코나는 주거 공간 작업 시 가족 공용 공간을 다양한 형태로 설계하려 노력한다. 사진은 리빙센스에 수록된 컷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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